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동 May 28. 2023

09. 제이든, 나는 도어 모니터~

조금씩 성장하는 제이든 파이팅!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 와서 제이든에게 물었다.


"제이든, 어떤 애가 제이든 엉덩이를 발로 찼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프진 않았어?"

"아니 엄마, 아프진 않았어. 그리고 나도 똑같이 발로 이렇게! 차 줬어."

제이든은 한국에서 계속 태권도를 했었다. 그나마 맞고 가만히 있거나 울지 않고 똑같이 했다고 하니 그러면 안 되는지 알면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 친구가 왜 그런지는 모르고?"

"응 몰라~. 그리고 애들이 나랑 안 놀아."

아이들이 하는 말을 제이든이 알아듣지 못하니 무슨 일인지도 알기 어려웠을 텐데 그렇게 묻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제이든, 선생님은 알고 계셔? 엄마가 선생님한테 얘기해 볼까?"

"아니 엄마, 선생님한테는 말 안 했으면 좋겠어."


그날 저녁 우연히 중국에서 살고 있는 후배와 연락이 닿았다. 그 후배는 중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데 제이든보다 어린 딸아이 하나를 중국에서 키우고 있었다. 제이든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후배의 딸아이도 처음 중국에 가서 말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적응했는지도 물어보았다.

"언니, 저녁에 둘이 같이 매일 일기를 써봐."

"응? 무슨 일기? 일기를 어떻게 써?"

"그냥 하루에 한두 가지씩 감사했던 일이나 말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얘기하게 해 봐. 보통 애들이 자기 무슨 일 있었다고 잘 얘기 안 하잖아. 근데 일기를 쓰면 그날 있었던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도 들을 수 있어. 특별히 무슨 일이 없어도 감사일기 쓰는 건 좋으니까. 나도 초반에 도움이 많이 되었으니까 언니도 꼭 해봐."

"아 그래? 알겠어. 나도 해볼게.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고마워!"

그 날 부터 1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적어내려간 감사일기 한권


그렇게 2월 15일부터 우리의 감사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내 일기는 내가 쓰고 제이든 일기는 제이든이 쓰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첫날 막상 해보니 제이든이 한글과 영어 모두 익숙하지 않아서 생각하고 적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우선 일기를 쓰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게 다음 날부터는 제이든이 얘기하면 내가 내용을 적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에는 제이든이 했던 얘기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고민이 깊어졌다. 그냥 선생님께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제이든이 싫다고 하니 어떻게든 사실을 제이든 몰래 알려야 했다. 생각 끝에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가정통신문에 메모를 써서 끼워 보내도 되지만 아무래도 한 번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제이든과의 감사노트에 내용을 적어서 보냈다.


2월 16일부터 3월 8일까지 선생님과 주고받은 손편지들


다행히 선생님은 이 상황에 대해 알고 계셨고 반 아이들이 이미 선생님께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제이든이 반 친구들과 놀라고 해도 혼자만 있었는데, 이제 제이든이 조금씩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생긴 거라며 잘 되었다고 (fantastic) 답장을 해주셨다. 그 이후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 동안 남자아이들이 그룹을 짜서 같이 놀게 하고 주의 깊게 더 살펴보겠다고도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제이든과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 이후 제이든의 감사일기에 조금씩 친구들 이름이 적히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도미노 게임을 한 이야기,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이야기, 그리고 학교에서 역할을 맡은 이야기들이 채워져 나갔다. 하루는 제이든이 자기 전에 집에 있는 블라인드를 내리면서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집에서는 블라인드 모니터 할게."

"응? 블라인드 모니터? 그게 뭐야?"

"자기 전에 블라인드 내리는거 한다고."

"아~ 그게 블라인드 모니터야?"

"응. 학교에 런치박스 모니터, 라이트 모니터 그런 게 있는데 나 오늘 학교에서 도어 모니터(Door Monitor) 됐어! "

"응? 그건 뭐 하는 건데?"

제이든은 으쓱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 학교에서 도시락 나오면 그거 갖다주고 쉬는 시간에 불 끄고 책장 정리하고 그런 거 하는 거야 엄마. 나는 도어 모니터라서 친구들 나갈 때까지 문 잡아주고 다 나가고 나면 문 닫는 거야."

"우와~~~ 제이든 멋지다! 그럼 친구들 나가는 동안 제이든이 문 딱! 잡아주고 있는 거네?"

"그렇지~~ 그래서 학교 끝나고 나갈 때도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나와야 돼서 좀 늦을 거야."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다 나갈 때까지 문을 잡고 서 있는 제이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다 나갔는지 교실 안을 확인한 후 문을 닫으며 스스로 뿌듯해하는 모습이라니...... 학급 내에서 뭔가 역할을 맡은 것이 기분 좋았는지 얼굴에서 연신 웃음이 배어 나왔다.

호주 학교에서는 우리나라의 '당번'같은 개념으로 모니터라는 말을 쓰는 것 같았다. 꽤나 세분화한 역할을 아이들에게 부여하고 교실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참 좋은 방법인 듯하다. 제이든은 다음에는 꼭 런치박스 모니터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힘들고 길었던 2월이 가고 제이든은 조금씩 친구도 사귀고 제법 친구들과 영어로 간단한 소통도 하면서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대 맨바닥에 앉지 않고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게 싫어서 바다에도 잘 가지 않던 제이든은 놀랍도록 빠르게 호주 생활에 적응해 갔다.

몸으로 알파벳(T)를 표현하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재미있게 하는 제이든과 팀


이전 08화 08. 제이든 형아, 내집에 놀러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