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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부터 변하자!

by 일심일도 채남수

요즈음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다.


대전에 한 초등학교 교사 A 씨가 같은 학교 1학년 김하늘 양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다.


죽은 하늘이는 이제 갓 8살로 꽃봉오리조차 피워보지 못한 어린아이이다.


춤을 좋아해 가수가 꿈이었던 천진난만한 아이.


A 교사는 무슨 원한이 있어 하늘이를 무참하게 죽인 것일까?


왜 같이 죽을 사람이 필요했을까?


죽기 직전 어린 하늘이의 공포와 고통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리고 아파 눈물이 난다.



많은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란 생각을 한다.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죽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살인이나 자살은 결코 지옥을 면치 못한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면 감히 그런 짓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물론 학교와 교육청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번과 같은 끔찍한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의 A 교사는 작년 12월 심각한 우울증으로 6개월 휴직을 했다.


그런 사람이 채 한 달도 안 돼 다시 복직했고, 학교는 그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의사 소견서만 받고 복직을 허가했다.


교육청에 ‘질환 교원심의위원회’가 있었는데도 의뢰하지 않았다.



A 교사는 복직하자마자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범행 5일 전 교육청 업무 포탈 접속이 느리다며 학교 컴퓨터를 부수어 망가뜨렸다.


다음 날에는 동료 교사의 목을 조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학교는 이런 상황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 교육청에 보고하여 사건 당일 장학사가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


장학사는 A 교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당사자는 만나지 않았고, 학생들과 A 교사를 분리하라고 권고했다.


불행하게도 이 조치는 곧바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A 교사는 살인할 흉기를 구매했다.


그는 돌봄 교실 옆 시청각실 문을 개방하고 자기와 같이 죽을 대상자를 물색했다.


돌봄 수업이 종료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하늘이를 시청각실로 유인하여 일을 저지른 것이다.



뒤늦게 교육부가 고위험군 정신질환 교사를 업무에서 배제할 수 있게 규정을 강화하는 ‘하늘이 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문제 교사를 심사하는 ‘질환 교원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규정을 준수하고 강화하여 운영되도록 개선한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 등으로 휴직을 했던 교사가 복직할 때는 의료 전문가와 교육 현장 관계자가 모인 위원회를 통해 복직 여부를 심사하는 절차를 마련 중이라고 한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조치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교직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2020년에서 2023까지 3년 새 2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전체 인원 대비 2.9%나 된다.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학부모의 민원과 교권 추락 등이다.



내가 교회에서 새 가족부 교육 전도사로 있을 때 일이다.


같이 새 가족을 섬기며 봉사하는 집사님 중 한 분이 나에게 기도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 집사님은 모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정년퇴직을 2년 남겨놓고 퇴직을 결심하고 기도해 달라고 했다.


도저히 양심상 믿는 자로서 문제아들의 황당한 행동을 방치할 수 없고, 일일이 간섭하면 징계로 쫓겨나야 하니 그 갈등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공부 시간에 잠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거나 화만 내어도 학부모로부터 고발되고 곧바로 징계 대상이 된다고 했다.


체벌해서라도 바로 잡아 주어야 하는데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 집사님은 잘 참고 견디어 정년퇴직했지만, 어찌 학교가 그리 변한 것인지 가슴이 아팠다.



이제 이 모든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릴 때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변해야 한다.


부모들은 내 자식이 귀한 만큼 가르치는 교사나 남의 자식 또한 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가정교육을 해야 한다.


가르치는 교사 또한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사랑과 헌신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보아야 한다.


존경하는 마음은 강요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바로 처신할 때 저절로 우러나올 것이다.


교육정책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교육부는 정치적 이념에 요동치지 말고 백 년을 견딜 수 있는 참신한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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