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아내의 잔소리가 도를 넘었다.
주로 운동에 관한 잔소리다.
‘헬스 좀 다녀와요. 오늘 팔굽혀펴기는 몇 번 했어요? 무슨 운동을 그리 빨리하고 와요? 야산을 걷는 것이 무슨 운동이 되나? ...’
얼마 전에 집 근처 야산을 산책하는데도 아내는 스틱을 가지고 가라 했다.
내 나이에 넘어져 고관절 골절이라도 생기면 큰일이 난다고.
아직 두 다리 짱짱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 했는데...
“두다리 짱짱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너무 같이 오래 살았다, 아내는 내 마음 속에 좌정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런 소리 하덜 마세요. 당신 나이엔 넘어지면 골절이 아니라 아예 부서져서 영 일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대까지 생고생합니다. 그리되면 어디 자기만 고생하나...”
간호사답다. 구구절절 옳은 잔소리지만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특단의 초치를??
아예 운동을 포기해 버리고 내 기도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일부러 기도방 문을 콰당 닫는 것으로 불만을 전달했다.
책상에 앉아 습관처럼 성경을 펼쳤는데, 아담이 홀로 일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여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로 아내를 만들어 주고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며 얼굴이 화끈거려 왔다.
다 나를 위한 조언이었는데 감사는 못 할망정 화를 냈으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등산스틱을 들고 조용히 나서려 하는데 야속한 현관 자물쇠가 ‘삐리릭’소리를 내며 열렸다.
“잘 다녀와요.” 안방에서 웃음을 담은 상냥한 아내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쳤다.
아내의 눈은 현관문에도 달려있다.
산을 오르며 덜 녹은 눈길, 오르막길,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스틱은 제법 자기 역할을 다 해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거실에 앉아 있다가 반갑게 맞았다.
“스틱을 사용하니 좋지요?“
”좋기는, 괜히 들고 다니느라 고생만 했네.“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다
지난주 목요일, 국선도를 하기 위해 막 집을 나서려는데 밖에 눈이 많이 온다며 아내가 또 스틱을 들고 가라 했다.
역이 바로 코 앞인데 무슨 스틱이냐고 역정을 내고 집을 나섰다.
사실 우리 집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상갈역 입구까지 150m가 채 안 되는 초역세권이다.
아파트 주차장을 막 나서는데 함박눈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흩날렸다.
얼마나 길이 미끄러운지 비칠비칠 술 취한 사람처럼 걷다가 채 50m도 못 가고 약간 경사진 곳에서 미끌.
보기 흉하게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거봐, 내가 넘어진다고 했지?’ 아내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일어서려 하니 엉덩이 쪽이 약간 아팠다.
혹시 고관절 골절?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넘어가긴 했지만 큰일 날 뻔했다.
역시 돕는 배필의 말을 잘 들어야 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