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지긋지긋한 여름
나는 여름이 싫다.
그 지긋지긋한 여름이 올해는 한 발 더 빨리 왔다.
빌어먹을 엘니뇨인지 뭔지? 지구의 온난화가 문제라고 며칠 전부터 TV에서 떠들어 대더니 5월 중순인데 날씨가 벌써 30도를 오르내린다.
할아버지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갓난아이에게 '우리 장손 우리 장손' 하면서 모든 창문을 꼭꼭 걸어 잠가 집안은 더 덥다.
멀리 중국과 몽골에서 날아온 황사와 미세먼지로부터 장손을 보호한다고 한다.
에어컨이 있는데도 돈 때문인지 좀처럼 틀려 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한지 내 의향은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장손에게만 녹음기 틀어 논듯 되뇌었다. ‘좀 덥지만 조금만 더 참자, 에어컨 공기도 너에게는 좋지 않아.’
내가 보기에는 그 녀석은 덥지도 않다. 아니 더울 수가 없다.
온종일 할아버지가 부채를 들고 설치시는데 무엇이 더울까?
정작 덥기는 내가 덥지. 그때마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항의했다.
‘은비야, 조용히 해 애 깨겠다.’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손자밖에 몰랐다.
게다가 여름철에는 4킬로 밖에 있는 공단으로부터 날아드는 공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혹여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 정도는 도를 넘었다. 이상한 냄새가 온 동네를 뒤덮어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빌어먹을 이놈의 공해! 빨리 이사를 하든지 해야지!---' 할아버지의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파트는 잘 지어졌는지 이중창문을 걸어 잠그면 집안은 끄떡없었다
할아버지가 왜 문을 닫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우리 집은 호텔이 들어서야 할 근사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앞에 바다가 그림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고 바다 가운데 기다란 섬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바다와 우리 집 사이는 각종 나무로 꾸며져 있는 공원이 넓게 자리 잡고, 그 중앙에는 축구 잔디 구장이 있어 한 폭의 그림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호텔이 설 자리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전망이 너무 좋았다.
어쩌다가 공해가 없는 맑은 날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바다를 품은 상큼한 공기가 시원하고 달았다.
밤에는 한층 더 아름다웠다.
공원을 따라 이어진 가로등 불빛과 멀리 신항만의 화려한 불빛 게다가 찬란한 밝은 빛을 뽐내는 공단의 수많은 불빛이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어쩌다 축구장에서 밤 행사가 있는 날이면 밝은 불빛으로 멋지게 드러난 녹색 축구장이 또 다른 매력을 뽐냈다.
공해만 제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그 매력에 빠져 거실에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을 밤낮으로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