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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2화: 나는 누구인가?

by 일심일도 채남수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2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우리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았다.


적어도 장남이란 녀석이 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생김새가 너무 달라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처럼 의젓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서 나는 많이 헷갈린다.


우리 엄마가 직접 나를 낳았는지 아니면 주워다 키운 것인지 알고 싶어질 때가 많아졌다.


도대체 내 기억에는 엄마 외에는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장남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처럼 온몸에 털이 나지도 않았고 눈 코 입 모두가 엄마 아빠와 비슷했다.


잠잘 때도 나처럼 자그마한 곳이 아니고 엄마 옆에서 내 활개를 쭉 펴고 잤다.


엄마 아빠의 보살핌도 나와는 달랐다


우는 목소리도 웃는 목소리도 엄마 아빠와 비슷했다.


더 큰 충격은 내게 대하는 엄마 아빠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엄마의 뽀뽀 횟수도 나날이 줄었고, 퇴근하면 안고 뽀뽀하고 같이 뒹굴던 아빠는 어쩌다 한 번씩 그것도 잊어버릴만 하면 마치 행사처럼 해 주었다.


정말 나 아니면 죽고 못 살더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할아버지네 집으로 이사 오던 날 나는 비로소 엄마 아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비야, 너는 대를 이어 주인 아들에게 충성해야 돼!’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내 뱉었지만, 나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실신할 뻔했다.



나는 누구인가?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면 도대체 우리 친엄마는 누구란 말인가?


그로부터 나는 소파 뒤에 은신처를 만들고 나 홀로 숨어 들어가 칩거에 들어갔다.


못 견디게 배가 고팠지만 참고 견뎠다.


집안 식구들이 나를 찾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나는 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두 잠든 틈을 타서 일을 보려고 슬그머니 나오다가 그만 할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재빨리 은신처로 되돌아갔지만 허사였다.


하지만 그날 난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에 그만 큰 감명을 받았다.


“은비야, 왜 그리 꼭꼭 숨어 있었어? 어디가 아픈 거야?” 꼭 껴안아 주시던 할아버지의 품은 더없이 포근했고 한없는 사랑의 너울이 가슴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할아버지가 좋아졌다.


온종일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할아버지도 내가 싫지 않은 듯 가끔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덕분에 내 마음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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