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성 성장기-나 사용설명서 1부 02
P여사는 갱년기를 심하게 겪지 않았습니다. 갱년기 신체 증상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흐르는 증상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얼굴이 달아올라 부채질을 하고 밤잠을 설칠 때, 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다행히 내 몸은 큰 요동 없이 이 시기를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생리는 조용히 멈췄고, 식은땀이나 관절통 같은 신체적 증상도 저를 비켜 갔습니다. 저는 제가 갱년기를 아주 수월하게 건너뛰는 행운아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남편의 퇴직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30년 넘게 매일 아침 출근하던 남편이 집이라는 공간에 하루 종일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석달은 고생한 그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자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오전 11시만 되면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제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여보 오늘 점심은 뭐야?" 그 평범한 질문이 왜 그렇게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모릅니다. 남편이 미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침범당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다 키워 독립시키고 이제야 겨우 오롯이 내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거대한 도돌이표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돌아서면 저녁 걱정을 해야 했고, 외출하려고 옷을 입으면 어디 가냐는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소파와 한 몸이 된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솟았습니다. 얼굴로 열이 오르는 대신, 마음속에서 화가 끓어오르는 증상. 그것이 바로 제게 찾아온 갱년기였습니다.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 끝에 방문을 닫고 들어가 펑펑 울었습니다. 남편이 은퇴했는데 왜 내가 우울하고 답답한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아내인 걸까. 자책하던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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