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량하지만 훨씬 행복한 중년여성

중년여성 성장기- 나 사용설명서 4부 01

by 지식농부

내 이름은 세 개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저를 지칭하는 단어는 제 이름 박경옥이 아니었습니다. 시댁에서는 에미였고, 남편에게는 여보였으며, 아이들에게는 엄마였습니다. 이 세 가지 호칭은 저를 지탱하는 정체성이었지만 동시에 저를 짓누르는 무거운 족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착한 콤플렉스 환자라고 진단합니다.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해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못하고 네, 어머니하며 웃어넘겼습니다. 며느리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강박에 명절이면 4시간씩 앉아서 허리가 아파도 전을 부쳤고, 제사상에 올릴 생선과 제수 준비로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끌고 다녔습니다.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더더욱 약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고, 대학생이 된 후에도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기다리느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내가 못 챙겨서 그런가 자책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내 뒷바라지가 부족한 탓인가 싶어 가슴을 졸였습니다.


내 시간의 90%를 넣어 가족이라는 꽃을 가꾸는 것. 그것이 여자의 삶이자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내 희생이 가족의 평화라고 믿었기에, 저는 제 감정과 욕구를 아주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살았습니다. 박경옥이라는 개인은 철저히 지워진 채, 기능적인 역할로서의 삶만 남았습니다.


번아웃, 그리고 찾아온 의문


그토록 치열하게 헌신했는데, 제게 돌아온 것은 공허함뿐이었습니다.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 아이들이 다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정년퇴직이라도 하고 퇴직금이라도 받는데, 왜 나는 30년 근속 주부이자 며느리인데 퇴직도 없고 휴가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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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작가. OK지식나눔연구소 소장, 은퇴, 퇴직강사. 분노조절강사, 꽃차강사 중년 여성의 건강, 경제 자립, 정신적 자유를 찾는 여정을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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