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연락처를 반으로 줄여보았다

중년여성 성장기-나 사용설명서 4부 03

by 지식농부

천 명의 인맥, 그리고 찾아온 고독


스마트폰 연락처를 열어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무심코 확인한 제 전화번호부에는 무려 1500명이 넘는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00엄마, 00학원 선생님, 예전 수강생, 네덜란드 살 때 알던 교민, 블로그 이웃, 일 때문에 번호 저장한 사람까지. 지난 수십 년간 제 삶을 스쳐 간 인연들의 무덤 같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인맥이 곧 능력이고 자산이라 믿었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면 곧바로 저장했고, 학부모 모임이나 동호회에 나가면 한 사람이라도 더 알기 위해 애썼습니다. 전화번호 숫자가 늘어날수록 제 인생도 풍요로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이 허전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그날 밤, 저는 그 1500명 중에서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해서 못 하고, 저 사람은 바쁠까 봐 못 하고, 그 사람은 내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가깝지 않아서 못 하고.


화려한 숫자 속에 갇힌 철저한 고독이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이토록 사무치게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그저 전화번호를 수집하고 있었구나. 관리하지도 못할 인연들을 끌어안고 사느라 정작 내 마음 밭은 잡초로 무성해졌구나.


책 출간이 알려준 진짜 내 사람


관계의 가지치기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첫 책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를 출간했을 때였습니다.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기쁨을 나누고 싶어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렸습니다. 평소 00언니, 00샘 하며 지내던 수많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제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평소 절친하다고 생각했던 몇몇은 축하한다는 건조한 메시지 한 통으로 끝났고, 심지어 읽고도 답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네덜란드에서 살 때 알고 지내던, 연락이 뜸했던 옛 친구가 국제전화를 걸어와 제 일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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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작가. OK지식나눔연구소 소장, 은퇴, 퇴직강사. 분노조절강사, 꽃차강사 중년 여성의 건강, 경제 자립, 정신적 자유를 찾는 여정을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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