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성 성장기-나 사용설명서 5부 01
나는 무색무취의 인간이었습니다
몇 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프로필을 설정하다가 취미라는 항목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이름, 나이, 거주지까지는 거침없이 적어 내려갔는데, 취미라는 두 글자가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독서라고 적자니 너무 뻔해 보였죠. 등산이라고 적자니 요즘은 일 년에 한두번 가는걸 취미라고 하긴 민망했습니다. 물론 인연따라 북한산도 가고 관악산도 가지만요. 요리라고 적으려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족들 밥 해 먹이는 당연한 일을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30년 동안 저에게는 취향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외식을 할 때 메뉴 결정권은 늘 아이들에게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채널권은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주말에 어디를 갈지도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이나 남편의 피로도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돈까스를 좋아하면 저도 돈까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고, 남편이 사극을 좋아하면 저도 사극이 취향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가족들의 기호에 맞춰 내 색깔을 지우고 투명 인간처럼 사는 것, 그것이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타인의 취향에 기생하며 살다 보니, 정작 나에게 묻는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박경옥 씨는 뭘 할 때 가장 즐거우세요?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그 단순한 질문 앞에서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나는 도대체 좋아하는 게 뭐지. 밥하고 빨래하고 일하는 시간 빼고,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까. 저는 색채도 향기도 없는, 그저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무취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서글펐습니다.
노는 것도 배워야 놉니다
남편의 정년퇴직 후,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숙제는 남아도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일만 하던 남편이나, 평생 살림만 하던 저나 시간을 때우는 법을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거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무한히 돌리거나,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는 연예 기사를 클릭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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