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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핑 Jul 08. 2024

내 고장 7월은 수국이 만개하는 이별의 계절

안녕,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어교육도시

  이육사 시인의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나의 고장 7월은 수국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꽃이 활짝 피고 는 것이 이 고장의 모습 같다.

  뜨거운 여름의 7월,  영어교육도시는 마치 텅 빈 유령도시 같다. 이곳 사람들은 방학 동안 육지 혹은 해외에서 지내거나,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네를 떠난다. 활짝 핀 수국처럼 일 년 간의 추억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나는 이별을 앞두고 따사로운 오늘을 맞다. 지나온 시간 속에 마주했던 모든 것 감사다. 지난 3년 간 내 고장이었던 영어교육도시에서 내 마음에 이토록 감사함으로 수 놓아준 인연들에게 고마웠노라며 고백하듯 글을 써 보고 싶다.



소소희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이 나는 것처럼, 맛있는 빵을 먹는 것 역시 내 마음을 채워준다.

 이곳은 목/금/토요일만 운영을 한다.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 있는 빵이 아닌 한참 기다렸다가 먹는 빵이니 더욱 맛있다.

  나는 딸과 하교 후 데이트를 하러 종종 들렸는데, 늘 먹는 메뉴인 쫀득 버터바와 딸기케이크, 초코우유와 딸기우유는 가끔 생각이 날 것 같다. 참, 우리 가족은 초코바게트를 가장 좋아했는데, 일찍 품절되는 경우가 많아 전화로 미리 예약하고 구매하는 손님들이 많다.

 해마다 학교에서 딸의 생일 파티가 있는 날에는 이곳에서 딸기 컵케이크를 주문하였다. 답례품 주문은 영업일이 아니어도 만들어주시기 때문에 딸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사장님 자매분들 덕분에 늘 기분 좋 발걸음 했다.

2021년 여름, 소소희 베이커리 앞에서.


제주 캔버스

  제주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캔버스에서 하고 싶다는 딸의 말에 따라 아쉬운 마음으로 방문했다.

늘 반겨주시는 사장님께서는 방학 일정으로 가족이 있는 캐나다에 잠시 가셨다고 한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이곳에서는 맛있는 식사와 더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긴 시간 동안 테이블에 앉아 함께 있는 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서 함께한 시간만큼 지인들과도 자주 갔던 곳이라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식당이기도 하다.

  사장님께서 국제학교 교직원분들과 친목이 두터우신 덕분에 올해 룸맘(반대표)을 하면서 선생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할 때 선생님들 취향을 잘 고려하여 고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환대와 함께 맛있는 행복을 전해주셔서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마음온 아트스튜디오

  우리가 처음 제주에 내려온 그 해 추운 겨울에 이곳이 생겼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꼬맹이의 손을 잡고 학원에 처음 방문했고, 차분하신 목소리에 따뜻함이 묻어나는 말들로 아이를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나도, 아이도 한눈에 반해 3년 동안 꾸준히 다녔다.

  학원 이름처럼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며 지도해주신 덕분에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마음속 세계를 그렸다. 수업이 끝면 사랑을 듬뿍 받은 모습으로 나와 그림 그리는 시간 내내 너무 즐거웠다는 말을 항상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제주를 떠나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꼭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마지막 수업 날에는 선생님도 나도 눈시울을 붉히며 인사했다. 그동안 우리 아이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 예술을 즐기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린다.

만 3세 때 그린 그림, 앉아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보았던 경험이 좋았는지 만 6세인 지금까지도 미술을 좋아한다.
딸의 그림들


버터풀마인드

  노는 것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있는 것도 너무 중요한 딸아이를 위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베이킹 스튜디오에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하였다.               교육학을 공부하셨던 선생님께서는 그 당시 만 3세였던 딸아이의 소근육 발달상태에 따라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맛있는 빵 냄새를 풍기며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처음 일 년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했고, 만 4세가 지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규수업을 다녔다. 베이킹 수업을 너무 좋아했던 딸은 혹시라도 아파서 결석을 해야 하는 날이면 수업을 가지 못한 서운함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딸이 이 수업을 이토록 좋아한 데에는 단순히 베이킹 때문은 아니었다.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사랑으로 지도해 주시고, 늘 아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친절한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님은 배경지식이 풍부하셔서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의 물음에 항상 자세하고 친절한 답변을 해주셨다.

  늘어가는 베이킹 실력만큼 마음에는 행복이 쌓이고, 베이킹을 하며 여러 문화를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맛있는 빵을 만들고 먹으며 아이의 관심 영역을 확장시켜 주셨다.

  제주를 떠나고 다른 곳에서 빵을 먹으면 선생님이 생각날 것 같다는 딸의 말에 나 역시 그러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삶에 늘 기억될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라며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을 글로써 전해본다.

버터풀마인드에서 구운 쿠키들. 토끼가 초콜릿을 안고 있는 쿠키가 예쁘다면서 아껴 먹었던 딸.


제주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제주에서의 인연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자면, 그 누구라도 입도 멤버들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러하다. 비가 오면 서로 우산을 씌어주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에는 서로의 온기를 나며 이곳에서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이들 덕분에 제주생활에 잘 적응했고, 잘 지냈다.

  독서모임 멤버들은 제주 생활에서 햇살 같은 존재였다. 섬에 고립되어 멈춰버린 듯 우울했던 그 시기에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오랜만에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여전히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인연들이다.

  골프는 치지 않는 식도락 골프모임 멤버들도 잊을 수 없다. 자녀들 연령대가 킨더부터 g12까지 분포해 있어서인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배울 점도 많았다. 함께 제주의 이곳저곳을 니며 맛있는 제주를 즐겼다. 내 기억 속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존중하며 예의를 지키며 같은 반 학부모라는 분명한 선을 넘지 않던 사이에서 언제부턴가 함께 아이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의지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아이 교육에 있어 보다 유연하게  그러나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안녕, 제주 영어교육도시

  수국은 토양의 성분에 따라 꽃잎 색이 달라진다. 꽃잎 색에 따라 꽃말도 다양하다. 나의 추억으로 피어난 수국은 해마다 색이 달랐을 것이다. 올 해를 마지막으로 피어난 국은 연두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 희망, 긍정적인 에너지의 꽃말을 지닌 연두색 수국은 3년 동안 더 단단해지고 유연하게 성장한 나에게 활기찬 안녕을 고한다.

  지난 3년 동안 아이는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고, 나는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곳에서 많이 배웠고, 새로운 삶을 위한 연습을 했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 하여 삼다도라 불린 이곳에서 여자들이 돌을 쌓아 바람을 막고, 문을 열어 사랑을 배우고 나누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잘 지냈다.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 잠시 서울에서 휴식을 갖고 난 후 새로운 곳으로 간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의 설렘을 안고서, 좀 더 야무지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함께한 모든 순간과 인연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안녕, 제주 영어교육도시.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아파트 뒷길에서 킥보드 타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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