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핑 May 31. 2024

제주도민이 계획한 제주여행

제주에서의 꼬마 손님들 맞이

  제주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여행 온 기분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역시 가족과 함께 해야 행복하다.


  오랜만에 동생네 가족들이 제주에 놀러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귀여운 조카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잠시, 이 꼬맹이들과 제주에서 무얼 먹고 놀면 좋을지 생각에 잠겼다. 이럴 때는 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제주에서의 재미있던 기억을 한가득 이야기해 준 딸 덕분에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2박 3일 여정동안 우리의 순간이 머물렀던 장소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해 보았다. 혹시 제주에 꼬마 손님들이 찾아올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1.   씨에스 호텔 <카노푸스 다이닝>
씨에스호텔 내에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호텔 주차장에서 식당까지 걸어가는 길은 마치 제주의 어촌마을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현무암 돌담길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드넓게 펼쳐진 야외 정원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어른과 아이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메뉴 대부분이 파스타와 피자, 햄버거와 같은 서양식 메뉴들이지만 우동과 같은 동양식 메뉴도 있어 입맛에 따라 고루 시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너른 잔디밭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고, 조부모님들은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손주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 모습을 보니 여행의 시작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씨에스호텔 외관과 내부



2.   토토 아뜰리에


   이곳은 우리 딸이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데 씨에스호텔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다. 이동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냐며 놀라지 마시길. 제주에서는 어디를 가든 차를 타고 30분 이상은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는 도민에게 일상이다.
 <토토 아뜰리에>는 아이들이 요리에 필요한 재료 일부를 텃밭에서 직접 수확하고, 요리할 수 있는 체험학습 공간이다. 매달 메뉴가 바뀌는데, 이번 달에는 ‘제주함박스테이크&빵’이다. 또한 요리에 따라 그에 맞는 제주산 재료를 사용하는데, 이번에는 ‘제주산 돼지고기’라니 엄마가 더 기대된다.
 수업 전 미리 나누어 준 앞치마를 아이들에게 입히고, 손을 씻고 나면 교실로 들어가 한 시간 동안 수업을 받는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한 시간이라는 휴식 시간을 통해 밀린 담소를 나눈다.
한 시간 뒤,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들이 나온다. 만든 요리는 그곳에서 먹어도 되고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이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 사진촬영에 동의를 하면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의 예쁜 사진을 보내주신다.

수업 하기 전 토토아뜰리에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3.   소규모 식탁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 일정이라 그런지 동생과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고로 오늘 점심도 외식이다.
나는 동생과 조카들을 데리고 딸과 평소에도 자주 갔던 우리 동네 맛집 <소규모식탁>으로 향했다. 식당 간판의 뜻을 알면 참 재미있는데 딸(소영)과 아들(규영)과 엄마(모)의 손맛을 담아내는 곳이라 하여 <소규모식탁>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빚어준 맛있는 만둣국정식인 ‘모’를 시켰고, 나와 동생은 ‘소’와 ‘규’를 하나씩 시켰다. 특히나 ‘규’ 메뉴인 카레가 아주 인상적인데, 익숙하면서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거친 맛이 느껴진다. 뵌 적은 없지만 분명 ‘사나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이실 것 같다.
  이곳 역시 먹고 난 후에 아이들과 걸으며 노닐 수 있는 정원이 있어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평소에는 조용히 걸을 수 있던 정원이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로 뒤덮인다. 평소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오늘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풍경이다.


내가 먹은 '규정식'






4.   스누피가든


  제주에 여행 오는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스누피가든>이다. 사실 이곳은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많고 아름답지만, 그곳을 향해 지나가는 길의 풍경을 눈에 꼭 담아두기를 권하고 싶다. 키 큰 비자나무들이 짙은 초록의 어두을 내리우는 ‘비자림로’, 이곳에 들어서면 쌩쌩 달리던 차들이 그 숭고한 경관에 저도 모르게 속도를 줄인다. 마침 차 안에서 듣던 음악이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었던지라 조수석에 앉아 있던 동생이 한 마디 하였다.


“언니, 과거로 돌아가는 길 같다.”


비자림로를 지날 때 동생이 찍은 영상


 
  비자림로를 지나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아름다운 길을 지나서 왔다는 아쉬움에 보상이라도 하듯 입구에서부터 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감수성이 메마른 아줌마 두 명의 입에서 ‘어머’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기자기한 실내정원과 비로소 ‘우와’라는 탄성을 자아내는 야외정원이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온다.
  제주의 자연과 스누피의 세상이 만나 이루어진 커다란 정원은 아이들과 어른 모두 마음껏 걷고, 뛰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작은 연못과 징검다리, 나무그늘과 그네, 모래밭과 꽃밭, 넓은 잔디밭과 비좁은 나무다리가 있는 이곳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놀이터이자 어른들에게는 동심  휴식처이다. 어린 시절 나의 소꿉친구였던 여동생,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우리는 스누피의 공간에서 마음껏 머물렀다.
  이 넓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하는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감동의 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찾아오는 피로의 시간이 있으니, 아이들과 방문하는 부모님들은 각오를 하고 와야겠다.

스누피가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



5.   돈어길


  제주에 왔으니 흑돼지는 반드시 대접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나는 우리 동네 흑돼지 맛집으로 동생네 가족들을 안내했다. 동쪽에서 우리 집이 있는 서쪽으로 오는데 1시간 30분이 조금 넘게 걸다. 스누피가든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할까 했지만 그렇게 되면 어두운 밤에 운전을 해야 하니 동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도착하기 30분 전에 예약 어플에 접속하여 대기 현황을 확인한 후 '줄서기'를 하였다. 아무래도 맛집이다 보니 늦게 가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하여 1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제주의 여느 고깃집에 가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삼겹살이지만 ‘21일 숙성 제주흑돈삼겹’이라는 꽤나 긴 이름의 삼겹살과 함께 이 집의 별미인 마늘밥과 계란찜을 시켰다. 역시가 계란찜이 아이들에게 인기이다. 우리는 두 개를 더 추가로 주문하였다. 친절한 직원분들이 직접 고기를 구워 주시는 덕에 동생과 나는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동생도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려주니 손님맞이를 위한 이번 외식 역시 성공적이었다.



6.   꿈낭밥집


이전에 남편과 식사했던 청국장, 김치찌개, 대하전복장



  제주도를 떠나면 생각날 것 같은 식당, 한 달에 두 번 이상 꼭 방문하는 곳, 가족들이 제주에 놀러 오면 항상 함께 가는 곳, 바로 <꿈낭밥집>이다.
  사실 이곳의 메뉴들이 제 특산물이라 할 수 없지만, 아주 맛있기 때문에 그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서울과 전라도의 그 중간 정도 되는 맛인 것 같다. 어쨌든 이곳의 메뉴를 모두 먹어본 나로서는 보리굴비와 청국장을 가장 추천한다. 아, 아이들의 메뉴로는 항상 갈비탕을 시켰는데 어른 입맛에도 잘 맞는다. 그리고 이 식당은 메인 요리도 맛있지만,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이 아주 맛있다. 특히 김치가 밥도둑이다. 김치가 맛있으니 김치찌개가 맛이 없을 수 있으랴.
  언니의 강력추천으로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러 이곳에 온 동생의 표정 갸우뚱했지만, 한 술 뜨더니 이내 말없이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는 말한다.


        “제주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 최고야.”
 

  따뜻한 솥밥 한 숟가락에 보리굴비 한 점 올려 냠냠 먹는 아이들을 보니 흐뭇하다. 그런 모습만 봐도 배가 불러야 하겠지만 나의 젓가락은 바쁘게 움직인다. 정말 맛있는 한차림이었다.

  이 집의 맛을 평가하자면, 엄마가 해준 밥 다음으로 맛있다. ‘에이, 설마’라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 방문해서 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꿈낭밥집, 맛있는 보리굴비




  식사를 마침으로써 동생네 가족의 제주 여행 일정이 모두 끝났다. 비행기 시간을 놓칠세라 서둘러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언제 또 우리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조심히 올라가라 손을 흔들어 본다. 제주에서 만든 좋은 추억, 가슴에 오래오래 새겨두기를.  

이전 18화 곶자왈, 그곳에 관심이 간다 <환상숲 곶자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