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할망들이 밭을 일구다 나온 돌을 뒤로 휙 던진다. 그렇게 무심하게 쌓은 돌무더기, 베케.
흐린 날 방문한 <베케>
도로변에 서 있는 가무스름한 콘크리트 외관의 건물, 그리고 그 주변을 갖가지 나무들과 화초들이 에워싸고 있다. 초록으로 짙어진 제주의 정취가 방문자의 코끝으로 들어와 기분 좋은 자극을 준다.
어두운 건물로 들어가 보자.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창문을 작게 만든 제주 집들의 어두운 실내처럼 카페의 내부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 어둠은 기분이 좋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초록색 풍경과 녹색의 생명들 사이로 들어온 빛으로 카페 안은 은은하다.
주문하는 공간 옆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
주문하는 공간을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총 세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베케>를 연결하는 것은 '회랑(한쪽에는 벽면이 있고 다른 쪽은 트인,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복도형의 지붕이 있는 건물)'이다. 닫힘과 열림이 공존하는 회랑에서 건물 외부의 모습을 선명하게 눈에 담는다. 그림자 속에 있지만 빛을 볼 수 있고, 한 걸음만 내딛으면 자연의 길 위로 걸어갈 수 있으니 회랑은 분리된 곳이 아니라 연결된 곳이다.
베케의 회랑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자연과 건물
정원으로 나가는 길은 건물 밑으로, 그리고 점점 높은 지대로 향한다. 건물의 아래를 보니 봄의 기운을 먹고 자란 화초들과 꽃들이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싱그러운 냄새를 실어 보낸다. 어두운 콘크리트 건물 밑은 오히려 환해 보인다.
처음 보는 노란 목련을 보며 좋아하는 나의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정원 어느 곳을 걸어도 봄과 함께 마음이 움직인다.
건축주 아버지의 창고였던 자리에 자라난 나무와 꽃, 화초들
폐허의 잔해 속에서도 피어난 꽃들을 보니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리가 건축주의 아버지의 창고가 있던 곳이라 생각하니, 자라나는 잎들과 피워내는 꽃처럼 그에게도 추억이 계절 따라 피어나고 저물기를 계속할 것이다.
정원의 가장 끝에 있는 건물, 그곳에 들어가 본다. 깊고 낮게 설계된 내부는 어스름하다. 앉아서 창 밖을 올려다보면 앉아 있는 공간과 대비되는 자연의 푸르름과 조금은 어둑한 햇빛이 장마철 잠시 드러낸 해처럼 안온한 느낌을 준다.
묵직한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낮게 설계된 카페 내부
베케, 그곳은 생명력을 지닌 곳
이곳을 실컷 거닐었다고 생각할 때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앉아 사색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껴본다.
콘크리트 외관은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덧대지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한다. 도슨트가 되어 설명하는 건축가의 말을 들어보니 화려한 멋을 내지 않은 골조가 자연의 일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감재는 떨어지는 빗방울, 계절에 따라 색과 모습이 변하는 자연이다. 외관의 어두움은 자연과 대비되어 나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리게 만든다. 건물은 자연의 색, 모습, 향기의 배경이 되는 것과 동시에 자연의 흐름을 따라간다.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카페를 나가기 전에 한번 더 숨을 들이켜고 내쉬어본다. 방금 전 내 입속으로 들어간 카페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풍경을 다시 눈에 담아본다.
이곳이 지니고 있는 정취는 자연의 생명력이다.
베케는 건축과 자연, 선명한 두 개체가 만나 경계를 흐리고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공존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