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끈적끈적한 단약 이야기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없는 2개월 후의 하루

by 보나

뒤통수를 지나 뒷 목, 어깨, 등 윗 부분까지 시커먼 우울과 불안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쥐어 뜯으려 하면 내 생살까지 다 뜯겨 버릴 것 같다. 비에 젖어 녹아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공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줄, 또 짓눌려 봐야 느낀다.


2024년 8월 13일, 이날은 나의 33번 째 생일 전날이자 2019년 1월부터 복용해 본 항우울제, 항불안제와의 이별 날이었다. 지내기 괜찮다는 내 말에 약을 이제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의사는 흔쾌히 마지막 약 28일 분을 처방했다. 반갑고 좋은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인사 - 또 보지 말아요! - 를 건네고 돌아서는 내 기분은 글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의외로 마냥 좋지도, 기쁘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의사의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의 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약 없이 괜찮을까? 약을 먹어보지 않아야 알 수 있는 일 아닐까? 내 사는 자리와 나를 가느다란 실처럼 연결해 주었던 약이었다. 때로는 훌훌 떠나고 싶기도 했고 진짜 끝내 버리고 싶기도 했던 것들을 붙잡아주던 실. 다만 이 소식이 너무 가볍게 힘 없이 흩어져버리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물었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부터 지독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이 현기증은 마치 진탕 술을 마시고 난 뒤 다음날 아침에 찾아오는 숙취같은 어지러움이었다. 머리를 돌릴 때마다 머리가 흔들리는 속도를 뇌의 무게가 따라잡지 못하는 듯한 현기증. 나는 최대한 빨리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을 했다. 걸을 때는 천천히 어딘가를 붙잡고 다녔으며 누울 때는 최대한 머리를 천천히 내려 놓았다. 다행히 운전은 머리를 고정해놓고 할 수 있어 그런지 가능했다. 현기증은 한달 반 정도 지속되었다.


약을 도움을 받지 않고서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또 있었는데 바로 내 지랄같은 성격이었다. 아마도 5년간 복용했던 항불안제와 항우울제가 불안과 우울 뿐 아니라 다른 내 성격까지 희석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던 정신병의 독한 증상이 걷어지고 나니 나는 과거의 무척이나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5년 간 나름대로 무난하게 이어왔던 인간관계가 사실은 약의 도움이었다니!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5년간 만나온 애인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했다. ‘잘 들어, 내가 이제부터 성격이 좀 바뀔 수도 있어. 놀라지 말고 적응 기간을 좀 줘. 사실 지금 이게 내 성격인데 나도 까먹고 있었어서…‘ 영혼바뀜 소설의 등장인물같은 대화를 나눠야만 했다. 내가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아.


약 봉지에 다시 손이 가려 했던 날들도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단약 부작용을 겪어 내고 나니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생각만 하고 실천에는 옮기지 않는 그런 밤이 될 것이다. 사람의 기분의 보통은 무엇일까? 행복한 쪽일까? 아니면 슬픈 쪽일까? 긍정적일까, 부정적인 쪽일까? 1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쯤 될까? 몇 년간 매일 매일 아팠던 나는 항상 보통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만의 보통을 느끼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의 보통은 옅은 우울과 불안함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하루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잘 해냈다고 확인 받는 행동을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지나간 내 하루를 자꾸만 남의 도마 위에 스스로 올려 놓았다. 도마 위에 올라 가서는 썰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다. 지가 올라가놓고 어이가 없다.


한달에 15천원으로 누렸던 평화가 그리워지는 오늘.

또 적응하는 하루가 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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