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미친(N) 알고리즘

좀 잤다고 그렇게까지? 도랏네…

by 보나

오늘따라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시원하게 비라도 오면 차라리 나으련만, 애매한 더위와 어쩐지 축축한 집안 공기가 사람을 한정없이 처지게 한다. 나는 그나마 햇빛을 보아야 살아나는 스타일인데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 날이다. 양치할 때 피를 뱉고, 오레오 한 봉지를 자리에서 다 까서 먹고, 달력 어플을 한번 보고, 생리를 시작하려나 보다 생각한다.


점심을 대충 먹고 나니 잠이 밀려온다. 오늘은 저녁 7시쯤 밖에서 약속이 있으니 노트북과 책을 한 권 챙겨 2시쯤 나서 카페에 갈 생각이었다. 바닥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느낌이다. 특히 머리. 7시까지만 가면 되니 2시에 나가겠다는 생각은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눈을 감는다.


몇 번의 원치 않는 전화와 알람 덕에 깊이 자지는 못하고 자꾸만 깼다. 정신은 차려보니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갑자기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머릿속 미친 알고리즘의 모습이다. 그저 날씨와 생리의 영향으로 졸려서 좀 잤을 뿐인데 ‘2시에 나가야지’라는 걸 못 지켰으니 ‘그정도도 못 참고 자서 못 나간 나’가 너무 싫어지고, 쓸모없는 사람 같고, 쓸모없는 나를 고칠 수 없을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세상에 나는 짐이고, 내 쓸모를 증명할 힘도 없고, 그냥 죽는게 모든 상황에 최고일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이 모든 긴 생각들이 한번에 ‘걍 죽어라’라고 빠르게 정리되어버린다.


이건 미친 게 분명하다. 챗지피티에 이런 상황을 기록하고, 과학적으로 잠을 잘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고 납득한 뒤, 이건 일반적인 휴식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샤워를 빠르게 하고 우산과 책을 챙겨서 무작정 대문을 뛰쳐 나오는 거다. 그러고 나면 이렇게 오늘의 상황을 글로 정리할 수 있는 나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온다. 미쳤지만 미친 생각은 해도 미친 행동은 안 하려고 노력한 오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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