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 에 대한 고찰

그것이 소세키가 말하는 心

by 재인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학교가 끝나면 어느 초등학생처럼 영어학원에 갔다. 하루는 원어민 선생님이 수업을 하던 도중 나를 가리키며 “Jane, you are so vain.” 이란 말을 했다. 내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건지, “Please look up the word vain. It’s you.”라는 말을 덧 붙였다.


허영심으로 가득하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에게는 허영심을 이해하기엔 이 단어가 삶보다 지나치게 일찍 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좀처럼 의미를 걷잡을 수도 없는 이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그 후로 줄곧, 나는 기분이나 생각 혹은 행동이 허영심 때문인 건 아닐까 되묻곤 했다.


물론 허영심이라는 단어와 영어 단어 vanity에는 약간의 간극이 있을 뿐 아니라, “헛된 것을 좇음”이라는 정의에의 모호함 때문에 각기 다른 이해와 오해를 낳기 쉽다. 가장 흔히는 겉치레와 같이 외적인 것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5학년 때 어느 선생님이 내게 한 말과 그 이후로 쭉 내 머릿속 한편에 살고 있는 의미의 허영심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는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을 경멸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그것을 좇지 않는 이유도 바로 허영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허영심은 아마도 에고이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가치관, 행동, 삶의 방식의 동기가 (지적) 우월주의에 의한 것.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나츠메 소세키가 이야기하고 싶은 인간 마음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그의 책 <마음>에는 사실 "마음"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다만 그가 묘사하는 인물들의 기이한, 그렇지만 또 대단히 보편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인간 마음이 실로 허영심 그 자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주인공이 "선생님"에 대해 느끼는 막대한 동경과 그 선생님이 본인의 친구 K에게 느낀 경외 모두 허영심을 기저에 두고 있다. 경외의 대상인 K의 삶도 스스로에 대한 엄한 채찍질, 고통과 결핍만이 정신적 함양을 위한 길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이루어진 지적 허영심 그 자체다. 또한 주인공이 부모님에게 느끼는 사사로움과 선생님이 본인 가족에게 배신당하며 느꼈던 분노, 그 직후의 안도도 물론 허영심 때문이다. 선생님과 K가 사모하는 여성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야기하지 못함에서 오는 괴로움도, 그렇기에 사랑을 얻지 못했을 때에 느낀 찰나의 아이러니한 기쁨도, 그녀를 마침내 아내로 마지하게 되었을 때 느낀 모순된 실망감도 그 뿌리엔 허영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동경, 경외, 수련, 사사로움, 분노, 안도, 사랑, 기쁨, 절망, 실망과 같은 감정들은 그들에게 놓인 특별한 상황 때문이 아니다. 더욱이 그들이 허영심에 가득한 사람들이기에 그 감정들의 근원지에 허영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우리 모두가 경험해본 지극히 일상적인 마음들이다. 누구에게나 누군가를 항해 존경 어린 마음도, 치미는 화도, 정열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만 소세키가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은 그 아주 보편적인 감정들은 결국 허영심 때문이 아닐지 한 번 즘 생각해볼 만하는 것이다. 인간 마음의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즘 고찰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소세키가 하고 싶은 말은, 허영심 그 끝에는 필연적 자멸이 있다는 것이다. K도 선생님도, 그리고 주인공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어쩌면 나 또한 그 운명의 언저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허영심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잃게 했다. 가장 가깝게는 친구를 잃게 했다. 나의 오랜 벗 H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좋은 게 좋은, 단순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나를 괴롭게 했다. 한 번은 <신과 함께>를 삶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라 했다. (그때부터 이미 지적 허영심이 발동한 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왜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냥이라고만 말했다. 나는 괴로웠다. 그녀와의 대화에는 깊이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무런 영감을 찾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녀에게 같이 책을 읽어보자고 권한 적이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이 추리소설이라 했을 때, 그 답을 향한 경멸의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마치 주인공이 선생님만을 좇는 모양 같았던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거 허영심이야." 원어민 선생님의 말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여전히 허영심의 굴레 속에 있구나, 부끄러웠다. H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단순한 답변에 사소하게 찌푸려지는 나의 미간이, 되묻는 나의 질문들의 미묘한 비아냥거림을. 그것에 대해서 그녀는 오히려 네가 만족할만한, 네가 즐거울 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그제야 내가 알량한 허영심에 친구를 잃었구나, 주인공의 선생님의 마음을 느꼈다 생각한다.


또 허영심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부정하게 했다고도 생각한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기 오래전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 전에 일본어 공부를 하거나 독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늦잠이나 낮잠을 자고 싶은데 참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수면욕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건강식'이 아닌 것은 거이 먹지 않는다. 먹고 싶은데 참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욕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는 또 어떠한가.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나 책을 읽는 것이나 똑같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인데, 마치 한쪽이 더 바람직한 것 마냥 그래서 곧 우월한 것 마냥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허영심에 독서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참을 수 없다. 그뿐일까, 또래 친구들에 비해 극적으로 물욕이 없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되도록 물건을 소유하고 싶지 않다. 소비에 의한 즐거움이랄까, 물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지배적이다. 이 또한 허영심 때문일까, 라는 생각을 참을 수 없다. 실로 그런 삶이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런 사람은 허영심에 대해서 일절 의심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에서 또 헛된 우월주의를 느끼는 것을 참을 수 없다. 허영심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인지조차 허영심에 의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결국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부정하며 조금씩 자멸에 가까운 상태로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선생도 K도 사사로운 사랑에의 욕구, 삶의 욕구들을 인정하기보다 자멸을 선택했지 않았는가.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줄곧 고민해 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서 나만 이상하리만큼 고민한다고 생각한 것조차도 참으로 허영심에 가득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허영심, 그것이 心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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