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응하지 않은 마음들은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과 같다. 새벽녘 강가를 떠도는 메아리.
금요일 저녁 임티가 나를 재즈 음악 파티에 초대했을 때 나는 내 양말이 거슬렸다. 종아리까지 올라오면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늘어나 발목 즘에 힘없이 걸쳐있는 흰 양말을 바라보며, “재미있어 보이네, 초대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가자 그는 야근을 하게 되었다고 30분만 더 늦게 만나자 하길래 나도 남은 일을 하기로 했다. 머지않아 그가 자기 일이 끝났다 했고, 나도 딱히 하는 것은 없었지만 왠지 바로 만날 기분이 들지 않아서 늦게 만날 줄 알고 뭔가를 시작했으니 그대로 늦게 만나자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일종의 감정적 방어 기제라는 프로이트의 말이 떠올랐다. 불가항력적으로 보이는 타인에 대한 마지막 일격이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늦춰진 약속시간에 맞게 그를 보러 나갔다.
임티는 모호함의 얼굴을 가졌다. 경계가 없는 그의 눈썹과 대비되는 굴곡진 눈꺼풀과 광대. 코끝의 은색 링, 안정적인 보조개. 오늘따라 그의 무한함의 얼굴이 그의 파스텔 빛의 빈티지 재킷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보라색 바지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조화로운 존재감을 드러내는 핑크색 양말은 저절로 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나의 늘어난 양말은 더 힘없이 쳐져만 갔다.
재즈 카페에 도착했을 때 그를 반기는 그의 친구들을 보며 임티는 왜 나를 초대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를 포함한 그의 친구들은 상당히 심플하면서도 역동적인 세련된 멋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노래를 했고, 즉흥 연기를 했고, 필름 사진을 찍었고,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서로의 미에 졌어가던 카페에서의 그날 저녁 나는 덩그러니 예술의 정 반대편에 서있는 스스로의 위치를 절감했다. 왜 나를 이곳에 초대했을까. 늘어난 양말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풍기는 아우라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우라가 닮았다고 느꼈다. 그가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이 되었고, 임티는 내게 친구 생일 파티에 가지 않겠냐 연락을 해왔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의 생일이라고, 그녀가 얼마나 예술적으로 영감을 주는 존재인지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번에도 가겠다고,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약속 시간인 8시보다 훨씬 전인 5시 즘 다시 연락이 왔다. 요요기 공원에 오라고, 같이 그냥 있자고. 나는 왠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응하지 않은 그의 외침이 정처 없이 허공을 떠도는 동안 8시가 되어갔다. 그리고 어떤 일인지 시간에 맞춰서 가고 싶지가 않았다. 8시가 지나서야 조금 늦을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을 했다. 약속 장소에 20분 늦게 도착했을 때 임티는 눈을 감은채 어딘가 많이 괴로워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모든 것에서부터 자신을 잘라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늦어서 미안해 다른 친구들이랑 있는 줄 알았어." 나는 순진 난만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나는 그의 고통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면의 세계에서 무겁게 걸어 나오며 완전히 다른 표정을 천천히 걸쳤다. "신경 쓰지 마, 오늘따라 예쁘네." 우리는 파티가 진행될 바를 향해 걸었다. 아침에 요요기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었다고 하길래 나도 일본 문학을 좋아한다 했다. 추천해줄 만한 책이 있냐고 물었는데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좋아한다 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독서 수준과 그의 세상의 수준을 감히 평가해버리려는 마음이 들었다. 바에 도착하자 비비안이라는 생일 주인공이 우리를 반갑게 마지해 주었다. 그녀는 임티를 보자마자 그의 목에 있는 세 줄의 진주 목걸이를 칭찬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가 그 대담한 진주 목걸이의 존재를 흘겼을 텐데, 왜 나는 여태 인지하지 못했을까. 나의 평가의 부재가 상당한 모욕처럼 느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목걸이였고, 임티였다. 비비안이랑 이야기를 하는 임티의 눈에는 묘한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눈이 내 눈과 맞닿았을 때 그는, "오늘은 너의 리드에 맡길래. 나는 조금 가만히 있고 싶어."라 말해왔다. 이 말이 의아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감정적 피로를 느끼고 있었을지는 한참이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둠이, 그리고 취기가 한창이 되었을 때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낯선 이들을 하나같이 팔다리를 활짝 편 채 마지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활발함의 매춘부가 된 기분이었다. 나라는 소우주를 한낱 싸구려 술안주로 전락시켜버린 기분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어제 재즈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과 벤치에 앉아 있는 임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활발함, 사교성, 대담함, 자신감의 매춘부가 된 나 자신은 그 친구들에게 어제의 늘어진 양말은 사실 너네야,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찰나의 성취감은 곧 부끄러움으로 추락해버리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우월감으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매춘은 역시 그들보다는 내가 늘어나버린 양말에 가까운 거라는 생각도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임티가 곧 새벽 3시가 되어가니 이제 슬슬 돌아가자고 했다. 막차가 끊겼기에 우리는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이 시간만을 기다리기라도 한 건지 그는 자전거 속도를 줄이며 내 옆에서 페달을 밟으며 말을 걸어왔다.
"좋은 시간 보내는 거 같더라."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나의 매춘을 확인받은 듯했고 그런 동시에 그의 마음을 확인해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그저 나일 수밖에 없는 나를, 완벽하게 부족하면서도 완전히 나 일수밖에 없는 나를, 그의 세계로 초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술적 풍미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향해 발버둥 치면서 점점 멀어져 가는 이틀 동안의 내가 어딘가 안쓰러웠다. 그런 동시에 그런 모양새까지도 오롯이 나임을, 그리고 그래도 됨을, 내가 응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이 담긴 말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위안의 마음들이 새벽녘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