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동거

사랑이 끝날 즘에

by 재인

유에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의 영어 이름 Zoey인데 아마도 그녀의 한자 이름의 뜻이 기쁨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녀답다, 이런 재치는.


그녀를 만나기로 한 아침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나는 오랜만에 시간을 들여 머리를 땋았다. 시간을 들여 화장을 고쳤고, 너무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꽤나 신경을 썼음을 보여주는 옷을 입고 나갔다.


약속 장소는 도쿄타워가 보이는 시바 공원. 그녀는 나를 30분 이상 기다리게 했다. 그녀는 그때를 처음으로 계속해서 나를 기다리게 했다. 우리가 같이 살게 된 후 같이 브런치를 만들어 먹을 때에도, 퇴근 후에 같이 러닝을 할 때에도, 주말이 되어 같이 놀러 나갈 때에도. 나는 항상 그녀를 기다렸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먼저 만나자고 해본 적이 없어."라고 그녀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수줍은 친구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왠지 너에게 만나자고 말해보고 싶었어."라고 거짓반 진심반의 대답을 했다. 작년의 나는 옷깃만 스쳐도 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물론 그중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그 감정이 배타적이지는 않았기에 나는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실로 내게 먼저 만나자고 말을 걸어온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의 만남은 그런 드문 일이었다. 그녀를 실제로 만나보니 화면으로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화면을 통해 본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느꼈던 그녀도 실제로 마주한 나를 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낄까? 화면에서부터 어딘가 모르게 내게 끌렸다는 그녀의 말에서 간지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시바 공원에서 히비야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영어는 서툴렀지만 그녀와 내가 비슷한 루트로 도쿄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같은 작가와 의류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날을 처음으로, 줄곳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것에서 영감을 받고, 같은 것들을 즐겼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그것을 나눌 수 없다는 커닿란 슬픔을 마주 하곤 했다.


영어가 서투른 모습은 나로 하여금, 대화에 있어 더 많은 적극성을 요했다. 요했기도 했지만 또 그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이후 대화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수동적인 그녀의 모습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행동을 취하게 했다. 그녀가 무능력 게임에서 이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나라는 사람의 온전성과 진실성을 깨 가면서 게임에 이기고 싶지도, 애초에 게임에 임하고 싶지도 않았다.


히비야 공원은 수국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꺼내더니 내게 꽃 앞에 서보라 했다. 나는 카메라를 응시했고, 그녀는 내게 허리를 좀 더 꼿꼿이 하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찍은 후 내게 보여줬다. 참으로 보통의 사진이었고, 그 미미함은 사진작가의 탓이 아니라 모델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최초의 생각은 이 관계를 계속 따라다녔다. 그녀의 씀씀이가 큰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치게 소비의 즐거움을 못 즐기는 것이라고, 그녀가 늦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내게 자주 디엠을 보내왔다. 장 보는데 과일을 샀다면서, 요즘에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서, 미술 전시회가 있는데 관심이 있냐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여태 코로나로 재택을 하던 우리는 다시 오피스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집은 회사에서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당시 나는 방랑자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도쿄의 여기저리 떠돌아다니며 짧게 짧게 살고 있었다. 가끔은 쉐어하우스에 살기도 하고, 친구네 집 거실에 살기도 하고, 몇 주 씩 호텔 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런 삶이 좋았다. 아무런 속박도 책임도 없는 고스란히 자유로운 상태. 가진 것이 쥐뿔도 없지만 또 잃을 것도 전혀 없는. 근데 문득 그녀의 말을 듣다가 "나도 살 곳을 찾고 있는데."라는 진심반 거짓반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일사처리로 같이 살 곳을 찾아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이사를 마쳤다.


우리는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스케줄이 비슷했다. 퇴근을 하면 같이 배드민턴을 치거나 일본어 공부를 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같이 저녁을 만들어 맥주 한잔과 넷플릭스를 즐기며 주말을 맞이 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그녀와 나를 위해 나는 떡볶이를 만들었고, 그녀는 마라탕을 만들곤 했다. 당연히 우리는 같이 장을 보러 다녔다. 그녀도 릭 앤 모티를 좋아했고 나도 릭 앤 모티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우리는 같이 강가 근처 공원에 가 요가와 러닝을 했고, 자전거를 타고 시모키타자와에 가서 빈티지 쇼핑을 했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고, 코딩에 대해 논했고, 페미니즘에 대해 논했고, 한중일 관계에 대해 논했다. 그녀는 카뮈를 좋아했고 나도 카뮈를 사랑했다. 우리가 함께한 대부분은 나의 제안에서 시작되곤 했다. 그녀의 소극성은 나의 제안에 대한 긍정으로 극복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을 때, 맛있는 디저트가 먹고 싶을 때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식탁이 필요해졌을 때, 옆 집과 갈등이 생겼을 때,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소극성은 폭력적인 무책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소극성에 전염되어 그녀를 향한 작은 초대의 손짓이 점점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었고 우리는 첫 핼러윈을 맞이했다. 우리는 같이 핼러윈 코스튬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열흘 전 즘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런 반면 그녀는 도통 만들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함구했다. 이틀 즘이 남았을 때 그녀에게 만들기가 잘 되어가냐고 물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가 고민을 하다가 재봉틀을 구매했고 아마 내일 도착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놀랐지만 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이 있었다. 세상은 아마 그것을 게으름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그녀는 집안일도 그런 식으로 임했다. 나는 조금씩 보이는 데로 치우자 주의인데, 그녀는 완벽하게 하지 않을 거라면 아예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우리는 가사를 분담해서 나는 화장실을 맡고 있었고 그녀는 분리수거를 맡았는데 가끔은 페트병이 식탁 높이 까지 쌓인 채 방치하다가 어느 하루 정말 모든 것을 다 해치워버리곤 했다. 위생 기준처럼 무엇이 마땅한가,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가의 문제는 사실 그 사람의 온 인생을 토대로 구축된 가치관의 문제이다. 삶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그 모든 가치관이 깃든 행동과 선택들에 대해서 논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청소 방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지만, 인간의 세상에서 또 인간의 언어로는 그것은 상대방의 문화, 그의 가정, 그의 중축을 이루는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삶의 방식과 경향에 대해서 함구했다.


시간은 더 흘렀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충만한 연말의 분위기 속에 우리는 클래식 연주회에 가기도 하고 야외 스케이트장에 가기도 했다. 일루미네이션을 자랑하는 미드타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기분이 내키는 대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밖에서 좋은 것을 보고 들을 때 우리는 서로의 동반을 기쁘게 생각했지만 집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를 기다리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시간이 흘렀다.


올해 봄이 되었을 때 팀에 신입이 많이 들어왔고 나에게 요구되는 일의 강도도 높아졌다.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아침 6시에 기상을 했고, 17시에 퇴근하면 스터디 세션을 하거나 러닝을 갔다가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늘 집에 있던 그녀의 얼굴을 볼 일이 점점 없어졌다. 나는 점점 엔지니어로서 능력을 키우는데 모든 열심을 다했다. 자연히 대화 주제도 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도 변해갔다. 그녀는 엔지니어로 일은 하지만 취미 및 그녀의 삶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집에서 혼자 기타를 치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쇼핑에 열정을 다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용하지 않은 재봉틀과 함께 그녀의 짐은 점점 우리의 거실 소파며 식탁을 점령해 갔다. 나는 거실 소파나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이 많지도 않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산더미 같은 그녀의 존재들, 그녀의 흔적들을 마주할 때면 내 마음속 한 켠이 답답해짐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 물질, 소비, 외부의 무언가로 인해 본인을 채우려는 모습이 어딘가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그녀의 서툰 영어 실력도 일에 대한 희미해져 가 버리는 불씨 모두 그녀의 존재를 지루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어떤 영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에 대해 느끼는 이 실증은 그 대상의 어느 특성 때문이 아니다. 나는 실증을 느끼고 싶고 그렇기에 실증을 느껴 마땅할 이유들을 탐색하는 것 같았다. 친구가 이별을 할 때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사람이 숨을 쉬는 소리마저 너무 소름 끼치게 싫었다고,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녀가 맥시멀리스트이건 미니멀리스트이건 그녀가 욜로족이건 워커홀릭이건, 그녀의 어떤 선택도 나는 경멸하게 되어있음을 느꼈다. 그 선택의 배경이 어떠하던, 그녀의 가치관과 삶 자체를 보잘것없게 느껴야만 한다고 정해버렸다, 내 마음은.


그녀를 만난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완벽하게 뭔가를 하자고 권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같이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같이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집이라는 것이 쉼의 공간이기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에 같이 있는 어떤 존재라는 이유로 적대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개인이 자신의 바운더리를 침범당했다고 생각할 때 드는 감정이 분노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분노는 즐거움, 두려움, 슬픔과 함께 생존과 직결된 4대 기초 감정 중 하나로 방어기제 역할을 한다. 위험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두려움 및 공포를 느끼듯, 우리의 것을 지기키 위해 분노를 느낀다. 생리 현상학적으로 보았을 때 누군가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필히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엄마나 아빠, 형제들의 짜증과 화는 특정 대상이나 행위를 향해있지 않다. 나의 시간이고 나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이니 존중해달라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기에 물리적으로 그녀의 물건들이 나의 물리적 공간을 침범한다고 느낄 때, 그녀의 삶의 방식이 나의 삶의 방식과 충돌해 내가 나의 가치관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함이 분노로 직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또 종종 생각한다. 애초에 그녀와 내가 문화적 차이의 문제를 지나치게 등한시 한 건 아닐까. 글로벌한 시대를 사는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두 사람인데, 그 지독한 클리셰 문화적 차이가 실감할만한 문제가 될 거라는 의심을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어떤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 내가 당연히 어림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같은 사람들끼리 살면 마땅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의 기준을 의아하게 생각했고, 그것은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삶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논할 수 없었다. 그런 이해하려는 과정이 배려라는 모순적인 이름하에 생략되면서 관계의 침묵과 간극이 쌓여갔고 소외와 경시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느꼈던 왜 청소를 그렇게 하는지, 왜 그런 소비를 하는지, 요리는 왜 그렇게 하고 왜 그 시간에 그 방법으로 밥을 먹는지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차근히 묻고 궁금한 태도를 견지했다면 나는 그녀의 숨소리마저 질려 버리는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나는 이 집을 나가려 한다. 문득 그녀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변한 건 나뿐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좀 더 참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의 감정도 들고, 내가 받은 상처들은 이미 별것도 아닌 것이 된 반면 나의 말 한마디 한 글자들이 그녀에게 어떤 상처가 되진 않을까 그런 조심스러움의 마음만이 남았다. 일 년 좀 넘게 알고 지낸 사이에도 이렇게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는데 10년, 20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어떤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갈까.


그녀와의 일 년 동안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자주 돌이켜 보게 되었다. 마침내 아빠의 기분을 이해하는 날들도 있었고, 여태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았던 엄마의 선택들에 대해 궁금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종말로 끝나버린 엄마 아빠의 관계에도 사실 서로에 대한 배려 때문에 대화의 부재가, 충족되지 않은 불만족들이 경멸로 한순간 변해버린 게 아닐까 한다. 그 둘이 20년 동안 더 복잡하고 미묘하면서도 강렬하게 경험했을 것들을 감히 옅게나마 겪은 게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그렇게 한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은 완전히 죽어버렸고 앞으로의 사랑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 느끼며 이 장의 막을 내려보려 한다.


이런 아련함이 흘러넘치다가도, 이제 전기 수도세 결제를 네 카드로 바꾸어도 되겠냐는 말을 해야 할 때가 되니 모든 감정이 픽 죽어버린다. 우리가 작게나마 나누었던 거대한 철학적 논제들과 무한하게 다채로운 도쿄에서의 사계절이 청구서 한 장으로 폄하하는 기분이랄까. 결혼 혹은 어떤 법적 관계 속에서 책임을 함께하는 관계는 결코 즐겁고 기쁨만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사건들과 조건들과 순간들이 압도적일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명의며 재산이며, 변호사에 재판 및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이별은 참으로 구질구질하고 아름다운 기억마저 뿌리째 뽑아 버림을 실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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