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사건.
이라고 엄마가 일컫는 일화가 있다. 그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 집에는 나와 영어 선생님, 윗집 아주머니와 그녀의 아들뿐이었다. 엄마의 부재.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으로 인해 이 이야기는 여러 차례 조각 낫던 일들이 하나가 되어 바퀴벌레 사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개미를 함부로 죽이면 안 돼. 개미가 유일한 바퀴벌레의 천적이야. 개미가 바퀴벌레 알을 먹거든.
이것을 몰랐던 엄마는 어느 날 집구석에 나온 개미 때 몰살 작전을 펼쳐버린 것이었다. 당시 나는 엄마랑 보스턴의 외각에 위치한 곳에 살고 있었다. 타운 하우스처럼 여러 채의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유난히 한인이 많아 Hankock village라는 이름은 우스갯소리로 Hangook village라고도 불렸다. 미국 집처럼, 우리는 이층 집에 뒷마당이 넓은 그런 집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뒷마당은 모두가 같이 사용하는 공용이었지만, 아파트와 시멘트 바닥에서만 줄곧 살았던 어린 나는 이층 집에 마당이 있다는 것에 우쭐대며 자랑을 하곤 했다.
윗집에 살던 아주머니는,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렌트비용을 아끼기 위해 우리 집에 살게 된 룸메이트었다. 처음에 같이 살게 되었을 때에는 혼자 살 것처럼 하던 그 아주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아들을 초대해 두 명이 우리 집 이 층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들 분에 대한 기억은 아주 흐릿하지만, 대학생 정도되는 나이에 다소 다부지고 아주머니에게 무례함과 무심함 그 중간 어디쯤의 태도를 일관했다는 느낌만이 남았다.
미국에서의 삶은 대체적으로 평온했으나, 한국사람으로 겪는 그런 뻔하디 뻔한 인종차별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간 음식을 점심으로 학교에 가져갈 때면 호기심으로 포장된 경멸의 백인 친구들을 눈빛을 피할 수 없었고,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가 한국인이라는 뉴스가 방송에 나왔을 때 엄마와 나는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우리는 죄스럽고 또 두려웠다.
그러는 와중 나는 제니퍼라는 영어 선생님에게 일주일에 한 번 영어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로스쿨을 준비하던 눈보다 하얀 백인 학생이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아파 경제적으로 부담을 져야 해서 로스쿨 준비를 거이 포기하다 싶을 정도로 한 채 과외 같은 것으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와의 영어 수업이 참으로 즐거웠다. 수업 소재로 사용되었던 한 과학책은 나에게 최초로 원자핵, 전자와 양자에 대해 알려주었고 덕분에 나는 한동한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과외시간이 되면 엄마는 집을 비우곤 했다. 아마도 선생님을 배려하기 위함이었지 싶다. 엄마는 제니퍼를 전적으로 믿었고, 그녀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룸메이트가 생기고 나서의 영어 수업은 제니퍼와 나, 둘만의 세상이 아니게 되었다.
엄마가 개미를 말살시켜 버린 후에 마주한 것은, 인종차별 다음으로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퀴벌레였다. 윗집 아주머니는 바로 메인테넨스에 전화해 바퀴벌레 퇴치를 신청했다. 메인테넨스가 오기로 한 날이 정해졌고, 우리는 그날 집을 몇 시간 동안 비우기로 했다.
메인테넌스가 다녀간 후 어느 때와 같이 엄마는 집을 비웠고 나는 제니퍼와 영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바퀴벌레야? 내가 바퀴벌레냐고, 말해 보라고!” 갑자기 위층에서 큰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왜 내가 자는데 메인테넨스를 부르냐고! 벌레약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내가 바퀴벌레냐고!”라는 고함소리와 쿵쿵 물건이 던져지는 소리가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아주머니가 메인테넨스 날짜를 까먹고 자기 아들한테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엄마가 돌아왔을 때 “오늘 수업 어땠어”라는 질문에, 나는 그저 순진하게 “제니퍼가 꽃이름 알려주겠다 해서 공부하러 나갔다 왔어”라고만 말했다. 추후에 윗집 아주머니가 소란 때문에 미안했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저 까마득히 잊혀 버린 이 사건은, 내가 고등학교 숙제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소개하는 발표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엄마의 권고로 복기하게 되었다. 엄마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나의 한 문장의 대답과 아주머니의 짧은 사과로 일련의 일들이 갖는 의미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냈다. 당시 7살이었던 나는 그렇게 추운 겨울날 꽃이름을 알려주겠다는 제니퍼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좋다고 따라 나갔던 것 같다. 그녀가 한국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이 그녀에게 어떤 공포심을 불러일으킬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은 채, 어린 아이이지만 나에 대한 그리고 혹은 나의 인종에 대한 배려로 꽃이름을 알려주겠다고 한 것이 아무래도 엄마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했나 보다. 엄마는 제니퍼가 나에게 ABC를 가르쳐주기 전에 사람에 대한 존중을 알려준 사람이지 않냐며,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그녀와 마지막 수업 때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숙제로 써 보기를 권했다. 물건을 소개하라고 해서 그 물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소재는 작은 entry일 뿐 그것으로 묶어 더 큰 의미를 엮어내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이 아니겠냐며.
그렇게 그녀와 작별인사를 한 후 10년이 지나 그녀에 대해 쓴 글은 고등학교 선생님의 마음을 울려 한 학기 내내 제니퍼와 나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나의 글이 선생님 자리 벽면에 위치하게 되었다.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정리를 도와주겠다고 엄마가 집에 놀러 왔다. 청소를 마치고 엄마가 "개미 나왔다고 함부로 죽이지 마라, 바퀴벌레 사건 또 일어난다."라고 웃으며 말했고, 나는 고등학교 때 그 글을 썼다는 것 마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다시 최초부터 모든 것을 복기하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꿈에도 모를 엄마는, 고등학교 때 수업 과제를 하던 나와 지금의 내가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라는 투로, 좋은 글이란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글이지 않냐고 그때와 똑같이 말했다.
그렇지,라고 대답하며 나의 글쓰기의 근원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근원은 엄마다. 그래서 언젠가 그녀가 나의 글을 읽게 된다면 그녀는 나의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도 부재마저 엮여내 한 편의 의미를 빗어내는 능력이 있을까,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