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사람들, 에 대한 고찰

by 재인

나는 생각한다. 그를 거쳐간 사람들에 대해서.

대학교 때 만난 중국인 여자친구는, 그에게 모든 처음을 선사한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일본어 수업에서 만난 그녀가 먼저 만나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했다.

그는 본인의 연애 횟수가 많지 않았기에, 게임 캐릭터가 경험치를 올리는 것 마냥,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단순히 응했다고 했다.


대학교 기숙사에 영화를 보다가 그녀의 제안으로 처음 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에 긴장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기숙사 방에 놀러 간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좁은 침대에서 그녀가 자고 본인은 항상 땅에 누워 잠을 청했다 했다. 그날은 왠지 그녀가 침대로 올라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난 사람들 덕분에 삶에 어떤 영향을 받고, 삶이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는 잠시 망설이다 그녀가 자신을 정말 진심으로 아껴줬다, 는 우문현답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답에서 그가 그녀 덕분에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하게 다뤄지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많이 슬프게 했다고 고개를 떨군 채 말한 적이 있다. 그가 가끔 자신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 잠시 그 관계에서 물러서야 했을 때 그녀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본인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는 그이기에, 한 곳에서 하나의 태스크에 몰두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잠시 시간을 갖는 줄 알았던 때에 그녀는 다른 사람을 만나 결국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인간관계에서 본인을 최우선시하는 것이 건강한 거라고, 네가 자신만의 시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절대로 그 관계를 위한 것이라고. 그저 위로가 아니라 내 가치관과 부합하는 그의 행동에 대한 반가움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나의 긍정을 밀어버렸다.


그와 등산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등산을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했냐 물었다. 나는 이별 때문에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그때의 이별은 내게 있어 난생처음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도, 목 아래로 밥을 넘기고 싶지도 않는 시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산속에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것뿐이었다.

이별 영화 주인공 마냥, 이별 노래 주인공 마냥 웃을 이유도 없고 눈물을 흘릴 힘도 없는 그런 경험이 네에게도 있냐고 그에게 가볍게 물었다.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하며 있다고, 고개를 위아래 흔들었다.


그때 그 묵언의 대답에 대해 생각한다. 그를 아프게 한 것은 그녀를 잃은 자신이었지 싶다.

그는 대학교 시절 때 고베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었다. 수학전공자인데 이공계수업을 제공하지 않는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가 그 학교로 교환학생을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 그런 그가 그녀를 위해 삶의 방향을 틀어버릴 타협을 했다는 것이, 그의 삶까지 사랑해 버리게 된 나머지 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아 하는 나를 왠지 씁쓸하게 한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고베에서 살고 있고 그녀가 도쿄에 올 일이 생기면 종종 같이 밥을 먹는다고 한다.


그 후 만난 일본인 여자친구와 그전 중국인 여자친구와의 온도차는 상당하다.


3년 전 즘에 그는 사진 동호회를 가입해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었던 것 같다. 살아생전 인스타에 포스트를 올리지 않는 그가, 그 즘에 자연, 건축물, 인물 사진을 몇 장 올렸었다.


그 사진 동호회에서 그녀를 만났다고 했던 것 같다.


그녀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 물었을 때,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 덕분에 스킨케어를 올바르게 바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 덕분에 일본어 회화가 편해졌다고도 했다. 스킨케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에게 있어 그녀의 존재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이상스럽게 웃겼다.

그녀는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영어를 잘하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는 않다고 안타까워하는 톤으로 답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힘들어했다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자신과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본 중하층 사회의 어두운 면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지만 영어를 못한다, 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일까.


일본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그이기에, 일본인인 그녀는 그에게 충분한 환상을 맛보게 해 준 인물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헤일로를 나는 절대로 가질 수 없다.


그녀를 만난 것은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이후다. 그녀의 집보다 그의 집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가끔은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그것에 대해서 당황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아 긴장하게 된다. 다른 색의 두 개의 같은 물건을 발견할 때면, 나는 애써 시선을 돌린다.


나는 상상하게 된다.

"우리 동호회에서 찍은 사진 인스타에 올리자."라고 그녀가 그에게 애교 있게 제안했을 것 같다. 그는 거절을 하지 못한 채 본인의 의지와는 반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은 정도의 거리낌을 느끼며 포스트를 업로드했을 것 같다. 그렇게 같이 사진을 편집하고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고를 단란한 모습이 내가 앉아있는 그의 집 소파와 중첩된다.


그녀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분명히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며 만남을 이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귀어 주지 않겠냐고 물어야 해야 했을 것이다. 사뭇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 절차들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의 결심과 고백의 말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며들여버린 그와 나이기에, 그런 딱딱하지만 또 취약하고 그렇기에 소중한 확언을 하리라 결심을 내리고 입 밖으로 꺼냈을 그가 아플 정도로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녀를 향한 서투른 고백을 어색하기 짝이 없게 입 밖으로 흘러 보냈을 그가, 그 말들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녀와 만난 지 세 번째 되던 때에 잠자리를 가졌다고 했던 것 같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헤어질 즘에 어떻게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을지. 집 안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을 만큼 궁금하다. 그녀의 몸매는 어땠을지, 그녀는 어떤 소리를 냈을지. 정점에 이르고 나서 껴안으며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을지, 아침에 같이 일어나며 또 어떤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지. 같이 아침을 만들어 먹었을지, 설거지 빨래를 같이하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을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그들의 연애라는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구멍을 메꾸려 하는 걸까,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진다. 질투라는 감정을 일부러 만들어서 일부러 느끼려 하는 것 마냥 둘의 모습을 계속 상상해 본다. 그러다가 나도 질투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이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주변사람들에게 진정 건강한 관계는 질투란 감정이 불필요하다고 설교를 하고 다니던 나의 허례허식이 부끄럽다. 실로 이전 연애는 참으로 안정된 것이었어서 질투라는 불필요한 감정적 소비는 조금도 없었다. 그가 다른 누구와 무엇을 하건, 내가 다른 누군가 무엇을 하건 괜찮을 것 같은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오히려 그런 욕구들에 솔직한 것이 지속가능한 관계의 핵심이라고까지 확신했다.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 할 때면 그것은 사랑의 부재가 아니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얼토당토 하지 않는 말이라고, 질투의 정도가 애정의 강도를 뜻한다고 생각하다니 퍽이나 미성숙하다고 그들에 대한 이상한 우월주의를 느꼈던 나다. 그랬던 던 나는,


지금 사랑을 하게 되었고, 나는 질투를 느낀다.

나는 그의 처음이고 싶고, 마지막이고 싶고, 그녀들보다 멋진 사람이기를 증명하고 싶다.

그런 어린 마음이 자꾸만 피어오른다.


어린 마음. 문득 전 애인이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와인의 얕고 짙은 취기를 뚫고 내 귓가에 맴돈 어느 가을 저녁의 말들을 나는 오래오래 잡아두고 싶었다.


"내가 너의 모든 걸 채워 줄 수 없단 걸 알아. 그래서 그런 부분을 그분들이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내가 감사해. 예전에 너를 거쳐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지금의 네가 있는 거고,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면 빨리 지나가줘서 또 좋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네가 될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마울 따름이야."


전 애인은 어떤 마음으로 나, 혹은 우리의 관계를 사랑했던 걸까.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은 어느 정도의 성숙함에서 나오는 마음일까. 나를 거쳐간 사람들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 그런 것들이 나의 전 애인의 멋진 모습이었다. 맞아, 그런 모습들을 나는 참으로 사랑했었다. 관계가 끝난 후에도 나의 전 애인은 나에게 이렇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만,


어떤 이유로 지금 만나는 그를 거쳐간 그녀들에 대한 여기저기 흩뿌려진 정보들을 한 데에 모으고 싶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모으고 보니 나는 인간이었고, 나는 사랑 앞에 한없이 인간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인데 가슴이 터지도록 담아내고 싶은 말이다.

그도 나도 그 말을 흘러 내보내지 못해 입술이 들썩이다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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