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재 Apr 11. 2022

비누로 단순하게 씻는 즐거움

  나무에서 열린 소프넛이 제아무리 손오공처럼 재간둥이라도 가끔은 그 순진한 세정력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른의 성숙함을 갖춘 비누를 들어 올린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어느 날 손안의 비누를 물끄러미 보다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가 왜 문득 생각난 걸까? 비누는 보통 한 손에 잡힐 작은 크기다. 입은 포장도 대개 간소하다. 그 한 겹을 벗겨내면 그때부터는 그저 묵묵하게 제 일을 하며 더러움을 가져가고 향기를 남긴다. 통통했던 몸이 긴 시간 끝에 야위어가다가 결국 손톱만 하게 작아져서 사라진다. 그런 비누의 마지막을 볼 땐 <중경삼림> 속 실연당한 양조위에 빙의해서 비누와 대화를 시도하… 지는 않지만, 이런 시 구절이라도 조용히 바치고 싶어진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비누가 보급된 이후로 손을 자주 씻을 수 있게 되어 인류의 전염병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참 고마운 비누인데 요즘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액체 세제의 인기에 사정없이 밀려서 처지가 영 위태롭다. 주방에서는 퐁퐁, 손 씻을 땐 손 세정제, 머리 감을 땐 샴푸와 린스, 몸을 씻을 땐 바디워시, 얼굴을 씻을 땐, 하아…. 많아서 숨 좀 고르고 흐읍, 클렌징폼, 클렌징 오일, 클렌징 워터, 클렌징 크림, 클렌징 티슈, 심지어 눈화장 전용 클렌징 제품도 있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외음부를 씻는 전용 클렌징 제품까지 존재하며 꽤 잘 팔린다는 풍문.


  그래, 액체 세제라도 괜찮다. 잘 씻기면 되지 않은가? 펌핑은 무심코 두세 번 하는 게 참 맛이라 비누보다 더 헤프게 쓰게 되지만, 그래도 괜찮다. 온갖 '전용' 세제를 사느라고 여러 번 돈이 나가지만, 그래도 괜찮다. 샴푸로 몸을 닦거나 바디워시로 머리를 감는 건 '성분상' 절대 안 될 일이니까. 각종 클렌징 제품으로 화장실 선반이 가득 차지만, 그래도 괜찮다. 화장실 문 닫으면 안 보이니까. 어제는 이게 가장 좋다고 해서 샀더니 오늘은 더 좋은 신제품이 나왔다고 말을 바꿔도, 까짓거 다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액체 세제가 떠날 때의 모습만큼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가야 할 때인 걸 알았으면 아름답게 가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고 구질구질한 흔적을 남긴다. 


  신경질적으로 펌핑을 해봐도 더는 시원하게 샴푸가 나오지 않을 때 우리 사이의 마지막이 왔음을 직감한다. 물을 조금 흘려 넣어서 통을 흔들자 통 안쪽 벽에 붙어 있던 샴푸가 비로소 녹아 나온다. 와, 근데 그 거품이 어마어마하다. 그 헹군 물로만 며칠은 더 머리를 감을 수 있을 정도다. 찝찝하게 며칠을 더 쓰다가 ‘이제 다 썼겠지.’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물을 넣어서 통을 헹궈본다. 그랬더니 맙소사, 아직도 비눗기가 가득하네! 지긋지긋해져서 통 안의 비눗기로 괜히 욕조 청소를 한 번 하고 드디어 통을 들고나온다. 그래도 아직 내부에 비눗기가 남았다는 건 함정.


  일단 화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여전히 샴푸 통과의 쌀과자처럼 바삭한 이별은 요원하다. 도대체 얘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 건지 궁금해 통을 뒤집어 재활용 표시를 찾아보지만 ‘other’이라고만 쓰여 있다. 어쩌라는 걸까. 그러다가 에이 몰라, 플라스틱이니까 플라스틱으로 버리면 되겠지 하고 던져 버린다. 하지만 내 마음속 직관은 사실 알고 있었다. 쟤는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지 못할 거라는 걸.


  매일같이 산처럼 플라스틱 쓰레기가 쏟아져나오는 세상에서 투명 페트병만 골라서 재활용하기에도 버거운 현실이다. 심지어 이 아이는 속에 거품이 남아 있고 색깔은 짙은 빨강, 짙은 보라, 초록, 하늘색 관능적이기 그지없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 펌핑이 된다는 건 그 안 보이는 내부에 금속 스프링이 숨겨져 있음을 의미하고 그걸 빼내려면 적절한 공구와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여러 소재가 복잡하게 섞인 것은 단언컨대 재활용되지 않는다. 아니, 이론상 가능은 하다. 비록 나는 무책임하게 버렸지만 다른 누군가가 사명감으로 그걸 골라내 공구를 들고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분리한 후 정성껏 목욕시키며 애정과 정성을 다해 새 생명을 준다면야. 그러기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늘에 뿌려진 미세먼지만큼이나 많다. 내가 버렸던 샴푸 통은 재활용 우선순위로 치면 3,948,284,053,847,104,558번째쯤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부엌에 설거지 비누를 뒀다. 고무장갑의 오돌토돌한 부분으로 슬쩍 문지른 후 양 손을 비비면 거품이 나는데 그걸로 그릇을 씻으면 된다. 전용 비누 거치대를 사는 것도 좋지만, 뭐든 사기 전에 안 살 방법부터 연구하는 제로 웨이스트 정신에 의거하여 플라스틱 병뚜껑 하나를 비누에 박아서 세워 두거나 비누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끈을 꿰어 어디 걸어 놔도 좋다. 나는 어떻게 하냐고요? 쬐끄만 화분에 비누를 넣어 놓는다. 바닥에 물빠짐 구멍이 있어서 좋더라. 어떤 방법이든 비누가 무르지 않게만 신경 쓰면 된다. 그다음은 화장실 핸드 워시와 바디 워시를 비우고 비누를 뒀고, 마지막으로는 클렌징폼을 비우고 비누를 뒀다. 내가 정착한 비누는 '가치솝'이라는 브랜드의 온몸 비누인데 동남아의 숲을 파괴하는 팜유가 들어 있지 않고 전 성분이 단순하고 정직해서 골랐다. 사용감도 만족스러워서 꾸준히 잘 쓰고 있다.


  여기까지가 ‘난이도 하’였다면 이젠 난이도를 좀 올려 보자. 누구나 한 번쯤 샴푸가 없을 때 비누로 머리 감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손가락에 뻣뻣한 머리칼이 엉겨드는 느낌은 정말 싫다. 그런데 '샴푸바'는 전혀 달랐다. 그걸로 머리를 감아도 머리칼이 별로 뻣뻣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이거 비누 맞아? …아니요, 애석하게도 사실 샴푸바는 비누가 아니랍니다. 샴푸바에 반해서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직접 만들어 적이 있다. 거기서 배운 놀라운 사실. 샴푸바는 비누처럼 시간을 들여 숙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샴푸의 성분을 반죽하고 꾹꾹 눌러 굳혀 만든다는 것. 잘못 보관하면 습기를 먹어 부서질 수도 있다는 주의 사항이 따라오는 이유다. 고로 굳이 분류하자면 샴푸바는 성분상 비누라기보단 샴푸에 더 가깝다. 마트에서 파는 도브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뻣뻣하지 않다는 후기도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데 그것 역시 정확한 이름은 비누가 아니고 '뷰티바'다. 클렌징폼 성분을 물기 없이 고형으로 굳힌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배송 과정에서 무게와 부피를 줄임으로써 탄소 배출도 줄인다는 측면에서 보면 샴푸바나 도브 뷰티바도 물론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나는 괜스레 비누에 더 마음에 갔다. 오랜 시간 숙성되어야 단단해지고 물에 녹았을 때 가장 순하게 분해되는, 인류의 곁을 제일 오랜 시간 지킨 바로 그 진짜 비누로 머리를 감고 싶었다. 


  아침부터 숨 막히게 더운 여름, 샤워기에 물을 틀자 서늘한 물부터 나와서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머리부터 온몸을 물에 적신 후 비누를 거품망에 문질러 거품을 낸다. 유기농 올리브 오일과 녹차 가루가 들어 있어서 짙은 초록색을 띠는 투박하고 단단한 비누다. 녹차 향이 옅게 날 듯 말 듯 한 그 거품으로 차례로 얼굴을, 몸을,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는다. 송송 땀이 났던 두피를 신경 써서 거품으로 마사지하고 물로 씻어 낸다. 샴푸바가 아닌 진짜 비누라는 걸 증명하듯 곧 머리카락이 뻣뻣해진다. 그래서 하나의 단계가 더 필요하다.


  미리 냉장고에서 꺼내 온 나만의 특제 린스를 들어 올린다. 물 500mL에 구연산 1 테이블스푼을 넣고 희석한 다음 집에서 키우던 로즈마리랑 타임 같은 허브잎을 뜯어 넣고 일주일 숙성시켜 만들었다. (시판 린스와 달리 보존제가 안 들어가서 냉장보관해야 한다.) 반쯤 물이 담긴 대야에 그걸 쪼르르 한 숟갈 정도 넣고 휘휘 섞은 뒤 고개를 숙여 그 물로 머리카락과 두피를 헹궈낸다. 약알칼리성과 약산성이 만나면 중화되는 단순한 원리다. 언제 거칠었냐는 듯 금세 보드라워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매번 오묘한 과학의 힘을 실감한다. 


  그러다가 머리털 개털 되지 않냐고요? 비누와 함께 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다행히 내 머리카락은 매우 안녕하다. 오히려 샴푸를 쓰던 시절보다 더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흐른다. 얼마 전에는 미용실에서 난생처음 ‘머리카락이 굵다’라는 칭찬도 받아서 한껏 의기양양해졌다. 향이 없다는 특성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구연산 가루를 선호하는데 만약 구연산이 없다면 식초 몇 방울로 대신해도 효과는 같고, 세탁 시 섬유 유연제 대신 얘네들을 써도 좋다.


  한때 여느 집처럼 이런저런 플라스틱 통들이 굴러다니던 우리 집 욕실은 이제 내 비누, 남편 비누 두 개가 고요하게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래도 충분히 청결하고 문명인다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비누인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굉장히 미니멀한 삶을 살고 있는 척했지만 아무래도 고백해야겠다. 얼마 전에 초초초 대용량 비누를 구입해버렸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쭉 비누에 장착하려고 구입을 결심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박력이 장난 아니었다. 농담 아니고 진짜 어른 여자 팔뚝만 한 비누다. 필요한 만큼 칼로 썰어서(!) 사용하면 된다. 굳이 이렇게 큰 비누를 쟁인 이유는 역시 제로 웨이스트. 이러면 작은 비누 여러 개를 살 때보다 포장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본다면 고개를 절레절레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싱글벙글이다. 오래도록 쓸 계획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님아, 그 소프넛을 마시지 마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