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의 기준
군대에 동아리가 있다고 하면,
여러분들 믿으시겠습니까?
장교교육대대에서는 주말마다 특정 시간에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 그 종류는 정해져 있지 않고, 후보생의 아이디어, 그리고 함께 할 적당한 인원수만 있다면 자유롭게 창설하고 활동할 수 있다. 물론 일정한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엉뚱한 생각을 가진 짱구 같은 후보생이 있을지 모르니.
우리 기수 때는 족구, 배드민턴, 보드게임, 요가, 댄스, 통기타, 밴드 등 다양한 동아리가 결성되었다. 물론 필요한 장비들은 택배로 받던지, 특별외박 때 집에서 가져오던지 각자 준비해와야 했다.
나는 종교활동 시간에도 교회 찬양팀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통기타나 밴드 동아리에 눈길이 갔다. 여름이 다가오니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사람들이 좀 몰려 있어 내가 연주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단순히 기타를 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자유롭게 연주하고 교류할 수 있는 소수정예의 통기타 동아리로 마음이 기울었다. 주말에 피곤한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쉴까.. 싶었지만 이미 뭔가에 홀린 듯 내 발걸음은 가입하고 싶으면 오라고 했던 호실로 향했고, 쭈뼛쭈뼛 동아리장 후보생을 불렀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통기타를 다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질이 순하다. 한정적인 경험이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이번 동아리장도 그렇고, 나를 따라온 내 소대 동기도 그렇고.
각자 특별외박 때 가져온 통기타를 들고 한 데 모여보니 표정들이 순박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척박한 후보생 생활에 숨을 돌려 본 이곳은 산들바람이 부는 푸른 언덕 같았달까. 거기에 더해지는 어쿠스틱한 선율은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에 가히 최고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장이 회의에 다녀오더니
저희 임축연 나오라는데요?
임축연.. '임관축하연'의 줄임말이다. 후보생들이 임관하기 직전에 열리는 행사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교관님들과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며 회포를 푸는, 흔히 이야기하는 '쫑파티' 격이다.
임관축하연 1부는 출장뷔페를 불러 성대한 식사를 곁들인 가벼운 음주가 허용됐고, 이제 배 채웠으니 소화시켜야지. 2부에서는 강당으로 이동해 일부 능력자들의 목숨 건 교관 성대모사와 장기자랑, 그리고 동아리별 공연이 진행된다.
그렇게 참가가 결정된 시점이 공연까지 약 2주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간이 여유 있어 보이지만 동아리 활동은 주말에만 할 수 있고, 평일에는 다들 소대가 달라 접선하기 어려웠으므로, 주말 간 1~2시간 남짓한 모임만으로 어떤 곡을 할지, 순서는 어떻게 할지 선정하고 연습까지 마쳐야 했기에 촉박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연시간은 30분. 이 시간을 잘 활용할 아이디어 제시와 선곡 등 의견 조율은 신속했고, 처음부터 마음이 잘 통해 이견은 없었다. '떼창 가능 여부'가 가장 큰 기준이었으며, 짧은 준비 시간인만큼 어렵지 않고 통기타만의 감성이 도드라지는 노래로 골랐다.
1) 델리스파이스 - <고백>
2) 악동뮤지션 - <오랜 날 오랜 밤>
3) 버스커 버스커 - <정류장>
* 앵콜: <그댈 마주하는 건 힘들어>
앵콜이 나올지 어떻게 알고 미리? 걱정 마시라. 앵콜은 창조하는 거다. 그리고 약 430명의 우리 동기들을 믿었다. 그냥 재생목록처럼 4곡을 주르륵 들려주기보다는 다 같이 부르고, 손 흔들고, 마지막곡이라며 밀당하고, 앵콜로 잡아다 무대 세워서 또 다 같이 손뼉 치는 그림을 그렸다.
연습은 건물 내에 비어있는 학과장에서 진행됐고, 통기타와 노랫소리에 많은 후보생들이 연습을 구경하러 왔었다. 어떤 노래하는지 대부분 알게 되었지만, 뭐 원래도 비밀에 부칠 생각은 없었기도 하고, 공연 당일 더 큰 떼창이 될 것 같아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임관축하연 D-DAY
1부 행사 때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진 뷔페 음식들을 나는 딱 배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었다. 공연 앞두고 배 아플까 봐. 테이블마다 제공된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공연에 영향이 있을까 봐. 보컬 친구는 탄산도 안 마셨단다. 대신 취기가 올라 왁자지껄한 동기들을 흥미롭게 관망하며 잠시 후에도 이렇게 굉음을 질러줬으면 하고 애들 술잔을 채워줬다.
우리는 성대모사 다음 차례였다. 소대장님들이 다 보고 계심에도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들의 열띤 성대모사 덕에 달아오른 분위기를 오롯이 이어받을 수 있게 됐다.
후 . . .
어두워진 무대에 올라 세팅을 하는데 손이 떨리더라. 객석에서 430여 명이 웅성웅성하는데 좀 압도됐다. 사운드 체크를 위해 살짝살짝 기타를 쳐봤는데 그 웅성웅성이 오오오로 커져서 당황했다. 이 친구들, 그동안 엄격 근엄 진지한 군가만 들어서 그런지 '선율'이 많이 고팠나 보다. 그게 어이없게 웃겨서 긴장 풀고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중2 때까지 늘 첫째줄에..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댈 안고서~
그대여 우리 우연이라도 그때의 맘 그날의 밤~
4곡 모두 실수 없이 잘 마친 것 같은데, 너무 찰나와 같이 느껴져서 솔직히 자세한 기억은 없다. 다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내 이름을 외쳐주던 우리 소대원들이 앉은 구역이 굉장히 특이하게 보였던 것.
황금빛 형광펜을 칠해놓은 듯했는데, 끝나고 생각해 보니 우리 조명은 흰색이었다. 그 정체가 뭘까.. 신묘한 경험이었다. 모르겠고, 설령 그게 내 환각이었다 해도 그 응원은 정말 황금빛으로 와닿았다. 그럼 됐지 뭐. 그렇게 황홀경을 목도하고, 내가 방금 뭘 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채 내 자리로 돌아가 다시 관람객이 됐다.
그 후. 교관님들께서 미간을 짚게 만든 '과락도 락이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던 밴드 동아리의 무대까지 마치니 어언 밤 10시. 곧바로 잠들 시간이었다. 근데 이게 잠들 수 있을 리가? 불은 꺼졌으나 온 호실이 임관축하연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난 침대에 누워 있는데 룸메이트들이 나를 계속 비행기에 태웠다. 쑥스러웠지만 참 고마웠다.
나는 잠시 혼자 생각에 빠지고 싶어 그 비행기에서 내린 뒤 화장실로 갔다.
홀로 차분하게 되돌아본 하루.
이렇게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제대로 판 깔린 무대에 서는 게 꼭 5년 만이었다. 대학시절 동아리에서의 정기공연을 마지막으로 조명 아래서 기타를 잡는 것이 처음이었다. 학교를 떠나기 직전이라 언제 또 이렇게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아마 다신 없겠지.. 했었다.
하지만 그건 마지막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그게 마지막이 아니도록 만들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손 들어서 찾아가고, 발을 떼서 움직였기에 그게 마지막이 아닐 수 있었다.
그것부터 선행되어야 좋은 동료를 만나고 말고 하지, 요즘 같은 자기 PR의 시대에 어디 숨어 가만히 있으면 누가 손 내밀어주나. 여기저기 손을 뻗어야 뭔가 잡히지. 놓치더라도 다시 뻗어야 뭘 도로 가져오지.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바뀌는 '보행자 작동 신호기'를 아는가. 어느 횡단보도에서 그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신호가 좀 기네..' 하며 바뀌지도 않는 신호등을 쳐다보며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내가 멍 때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차들이 쌩쌩 지나갔을지 가늠조차 안 됐다. 내 지나온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흘려보낸 골든타임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 닫혀버린 평행우주는 얼마나 될까.
세상은 바뀐다.
그러나 바꿀 줄도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