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새어 나와선 안돼!
여러분, 커피 좋아하시죠?
네, 저는 바닐라 라떼를 좋아하는데요, 우리 군필자들이 좋아하는 커피가 또 있습니다. 바로 라떼. 이분들, 라떼 참 좋아들 하시죠. 하물며 저처럼 군대가 3번째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눈총을 사지 않기 위해 고일지언정 어디 내드리진 않습니다. 마음속 어딘가에 풍미 있게 내려진 라떼를 머금고 재재입대하던 날. 같이 볼까요?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정문. 3번째 입대. 나도 내가 웃겨서 그냥 웃음이 났다. 이런 걸 데자뷔라고 하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 그건 꿈이 아니었으니 데자뷔라고 할 순 없지. 그건 3년 전 가을, 실제로 재입대해서 데굴데굴 굴렀던 감동 실화였으니.
재입대를 할 땐 육군에서 공군으로 온 거라 총 좀 쏴보고 행군 좀 해봤다 뿐이지 개념은 많이 달라 '했던 거 또 한다'라는 느낌이 확 오진 않았는데, 공군 부사관에서 공군 장교로의 재재입대는 서로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어 어떤 일들이 있을지 투시경으로 보듯 그 고생길이 훤했다. 소리 없이 찌푸려지는 미간을 짚으며.
그래서일까, 부사관으로 입대했을 때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걸쭉한 라떼 한 잔이 마음속에 내려졌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대부분이 동생이었던 동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고농축 라떼, 절대 밖으로 새어 나와선 안 된다. 그게 속에서 막 부륵부륵 끓어올랐으나 뚜껑을 꾸욱 눌러 새어 나오지 않게 했다.
다만 가끔 앞으로의 훈련을 미리 맛보고 싶어 나를 찾아오는 비밀손님에 한하여 스윽 라떼 한 잔을 내려 건넸다. 물론 '어떤 훈련에서는 어떤 걸 한다' 정도의 팩트만 전달하고 주관적인 견해는 최대한 배제했다.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간 조언과와 라떼는 한 끗 차이니까.
학사사관후보생.
예비역 병장 겸 3년 차 하사였던 내게 새로 부여된 계급이다. 여기서 3달 동안 갈고닦아 장교로 재재탄생해야 하므로, 시간이 꽤 촉박했다. 오만촉광(五萬燭光)의 소위 계급장 달았을 때, 장식만 바꿔 끼우고 생각이나 행동은 병사, 부사관 때와 그대로이고 싶지 않았다.
본격적인 훈련 전, 사관후보생의 서열은 준위 다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중대장님께서 너희들은 방금 들어왔는데 군 생활 20년 한 원사보다 높은 서열을 부여받았으니, 그 의미를 곱씹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고 하셨다. 목소리만큼이나 굵고 무거운 메시지였다.
그리고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뜻의 신독(愼獨)을 강조하셨다. 누가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한다면 그건 장교인 '척'하는 것이지 않나. 노력하기는 싫고 장교 대우는 받고 싶다? 그건 군대 계급놀이 하고 싶은 거지. 무슨 그런 날강도가 다 있나.
말뜻 그대로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절제하고 삼가는 것. 본인부터 잘 다스려야 사람들 앞에 떳떳하고 그들을 통솔할 자격이 있다. 어느 교범에도 없는 말이었지만 장교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솔직히 3년 전과 바뀌면 얼마나 바뀌었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의외로 시작부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자, 나는 꾸욱 눌러뒀던 라떼 뚜껑을 따고 촤악 갖다 버렸다. 오래전에 우려낸 거무튀튀한 라떼는 이제 필요 없다. 지금부터 비바람을 가르면서도 그 속의 깨끗한 물을 정제해내야 했다.
비바람 불어도 우리는 하늘을 품으리라
멀리 두고 온 사랑을 위해 내 조국을 위해
미약한 날갯짓임에도 하늘을 가르리라
눈부신 청춘 모두 이곳에 장교교육대대
- <장교교육대대가> 中
노래가 참 좋은데 달리면서 부르기는 좀 빡세고, 준수한 가창력이 요구되는 곡. 이제는 공군 학사장교의 상징이 된 이 노래만 부르면 비바람을 가르는 보라매를 연상케 한다. 우리 얘기다. 지금부터 내 청춘, 바로 이곳에.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어쩌면 내 20대의 마지막 도전이 될지도 모르니.
재재입대 전 여러 출처로 들은 소문대로 확실히 훈련의 육체적인 강도는 많이 줄어 있었다. 얼차려를 받을 만한 상황에서는 감점표만 뜯어갔고, 소대 전체가 엎드릴 만한 상황에서는 잘못한 개인만 콕 짚어 박살 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훈련 기조가 확실히 몸을 덜 쓰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군필자의 시선이지, 군대 아무리 좋아졌다 한들 누군가는 그런 군대가 처음일 터. '그놈의 좋아졌다, 좋아졌다. 뭐 어쩌라고? 난 옛날 군대 본 적 없고 이게 처음인데.'라고 생각하는 동생들도 분명 있을 거니까.
그런 동기들의 입장도 고려해서 무지성으로 라떼를 끓이면 안 된다. 몸이 편하면 말이 늘고, 말이 늘면 갈등을 빚기 마련. 줄어든 부상 위험만큼 늘어난 분쟁 요소에 미리 방화수를 뿌려 놓던가 해야 했다. 모든 다툼은 말에 기인하므로.
그러던 훈련 후반부. 훈련단장님 주관의 지휘관 특별교육이 있었다. 장군께서 말아주는 소위 시절 썰은 귀했다. 이후 전투조종사로 살아오며 얻은 교훈들도 들려주셨고, 까마득한 계급 차이였지만 비교적 자유롭고 편안하게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다. 너무 편하게 해 주셔서 그런지 자는 동기도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게, 군대는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기수라는 걸로 선후배가 명백히 나뉘어 있고, 이건 절대로 뒤집을 수가 없다. 근데 그걸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고. 바로 공부.
규정과 교범 공부만이 그걸 뒤집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크게 공감했다. 실제로 그와 유사한 사례를 작전실에서 종종 보고 왔기 때문에. 박학다식한 소위는 쉽게 건드리기 어려웠고, 작전실에서의 지식이란 그 자체로 보호막이 될 때가 많다.
아차 싶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긴 체력을, 여유가 생긴 시간을 두고 우리는 어디에 썼나. 그 많은 시간을 갖고도 뭘 했나 도대체?
몸이 편하면 드러누워 놀 게 아니라, 장교라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 장교라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뚜렷관 관점. 나만의 장교관(觀)에 대해 더 고민하고 탐구했어야 했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핸드폰도 없이 장교 본연의 역할에 대해 고찰할 시간이 이만큼 주어질 날은 앞으로 없을 거니까.
껍데기만 우르르 몰려가서 총 쏘고, 껍데기만 우르르 군가 부르면서 언덕 타 넘으면 뭐 하나? 그건 병사, 부사관도 하는 것들인데. 중요한 건 그 알맹이. 그 속에 무엇을 채워가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그럴 에너지가 충분했을 텐데.
다른 신분과 유사한 훈련을 받는 와중에, 어떤 점에서 장교 후보생만의 두각을 빚어낼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명찰의 색깔이 그들과 굳이 다른 이유는? 굳이 다른 건물에서 묵는 이유는? 굳이 다른 계급장을 다는 이유는?
군대? 좋아졌죠.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