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댄스

임무가 끝나고 난 뒤

by 재룬

지난 10월, 덜그럭 덜그럭 요란하게 3번째 군번을 향해 버저 비터를 날린 곳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려앉던 무렵이었다. 그렇게 학사장교에 지원했으니 일단 시험준비를 해야 했다.


요즘 타군, 타신분도 다 그렇듯 경쟁률이 거의 1:1로 수렴했기에 당락을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교대근무를 돌면서 필기시험이나 면접일정을 맞추는 것이 그나마 관건이라면 관건이었다.


지금은 원서접수만 한 상태라 '저 장교 지원했습니다'라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꼭 아셔야 할 직책에 계신 분들과 가까운 동료 한 줌 정도. 혹시 모르지.. 떵떵거리다 떨어지면 그게 얼마나 꼴 사납겠나. 그래서 조용히 다녔다.


그러나 역시 소문이 빠른 우리 작전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더라.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들처럼 신경삭이라도 연결되어 있는지 여기는 당최 비밀이란 게 없다.


그도 그럴게, 나는 이미 재입대자였는데 거기서 군대를 또 간다고 하니 소문이 더 빨리 퍼졌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재입대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지만, 군번이 3개가 되는 재재입대는 좀 흥미로웠나 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면을 보았는데, 아무 생각 없다가도 시선이 집중되면 그중엔 분명 눈을 흘기는 자들이 꼭 생겨난다는 것. 그들의 관심을 가장한 약간의 비아냥 또한 감수해야 했다.


처음부터 장교 하지 부사관은 왜 했대?


장교 왜 가냐? 피곤하게. 부사관이 더 나은데.


아이고, 김 소위님 아니십니까~ 필승~


그냥 허허허.. 넘겼다. 어차피 어떤 답변을 해준들, 면접관도 아니면서 꾸부정한 자세와 갸우뚱한 고개로 본인만의 결론이 픽스되어 있는 부류라 의미 없이 소모적인 대화는 그냥 피했다. 여기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사람 있습니까? 암튼 대충 넘어갔다.


그리고 아직 합격도 안 했는데 미리 경례하는 고참도 계셨는데, 말투나 행실로 보아 그건 호의나 축하가 아니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웃고 있지만, 진짜로 웃겨서 웃는 건 아닌 나날들 속에서 최종합격을 했다. 나의 재재입대 날짜는 2월 27일 월요일이었고, 나는 바로 전 주 목요일까지만 근무하고 여기를 떠나기로 했다. 이것도 날짜가 나오니 시간이 잘 안 가더라.


4년 전, 전역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말년병장 때가 생각났지만 이번에는 이 조직을 완전히 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이 더 무거운 자리로 떠나는 것이었으니 행실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정성을 다했다.


무엇보다도 '저거 저거 이제 가는 사람이라고 막 나가는구만', '장교 경쟁률 바닥 치더니 저런 애도 받아주나 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마지막 근무 전날인 수요일. 뜬금없이 상급부대 주관의 대규모 임무를 맡게 됐다. 엥.. 굳이..? 뭐 안 할 이유는 없었다만.. 근데 난 여기를 곧 떠나는데 앞으로 계속 근무할 사람이 이걸 하는 게 더 유익하지 않겠나 싶어 벙찐 나와는 달리 사람들은 은근히 신나 보였다.


오~ 라스트 댄스다~ 라스트 댄스~


그때가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여운이 찐하게 남아있던 시기였는데, 그 대회가 메시와 호날두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아 각종 매스컴에서도 빅뱅의 <LAST DANCE>라는 노래와 곁들여 뭐만 하면 라스트 댄스 거리던 시절이었다.


그 여파였다. 그 무렵엔 그걸 빌미로 내일모레 전역하는 사람들에게도 일 많이 시켰고, 불똥이 튀어 군대에서 군대 가는 나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위에서 친히 서사까지 만들어준 탓에 거절하기도 뭐해서 군말 없이 마지막 대규모 임무를 해야 했다.


그렇게 라스트 댄스 당일, 사전 예고 없이 사령부 참모분들과 우리 부장님 계장님께서도 내 콘서트를, 아니 내 임무를 보러 오셨다.


중령, 대령분들이 뒤에서 보고 계시니 무슨 레이저가 쏘듯 뒤통수가 따갑더라.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싼다는 '깡'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라스트 댄스는 매드 무비가 되었을까? 아쉽게도 경황이 없어 기억이 안 난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그 결과가 눈에 들어왔겠나. 대신 엄청 시끄러웠던 잔상만 있다.


대신 임무가 끝나고 난 뒤,

머릿속에서 어떤 노래가 들려왔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 샤프 <연극이 끝난 후> 中


모든 임무가 끝나고 나의 마지막 퇴근이 다가올 무렵, 가장 뒤쪽 구석으로 가 혼자서 작전실을 한눈에 담아봤다. 아까와 같은 분주함은 온 데 간데없고 정적만이 남아있다. 고독만이 흘러들었다. 내가 한때 울고 불며 뜨겁게 몸 담았던 곳. 그래, 이제 여기를 등질 시간이다.


몇몇 사람들이 떠오른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던 나의 동기들과 철없는 동생 같던 후배들은 말할 것도 없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줬고, 당시 우리 통제대장님은 어느 날 내 나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시곤 중령 진급심사 3번까진 들어갈 수 있으니 잘해보라고 하셨다. 또 내가 많이 배우고 신세 졌던 모 준위님은 여기 다시 오지 말고 더 좋은 특기 받으라며 목에 핏대까지 세우시며 몇 가지 추천도 해주셨다.


그리고 다음 날, 고마운 선배 김 중사님. 내가 아직 차가 없는 걸 알고 계셔서 숙소 퇴거를 할 때 몇 박스나 되는 짐들을 직접 차로 우체국까지 날라 주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캐리어와 가방이 무거워 보여 손수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시기까지..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차근차근 일 많이 알려주셨는데, 다 가르쳐서 사람 만들어 놓으니 떠나서 죄송했다. 저 멀리서 내가 사라질 때까지 손 흔들어주셔서 더욱.


부사관 한 명이 장교가 된다고 해서 뭐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신세 진 이 사람들의 이름과 그 소속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단순히 3번째 군번을 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재입대는 맨몸으로 했지만,

재재입대는 무거운 어깨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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