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거리 밖 어딘가

Launch & Leave

by 재룬

논산, 눈물로 품어 냈던 첫 번째, (1화)

진주, 강물을 거슬러 올랐던 두 번째, (9화)

대구, 종료 직전 쏘아 올린 세 번째 총성. (18화)


그 탄환들이 빚어낸 파동은 미약했으나 분명 그 울림에 함께 응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아직도 한창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총알이라 한들, 공기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을지 언정 언젠가 뭉게구름 속에서 멈춘 뒤, 미련 없는 낙하를 시작할 것이다.


뭔가 추진체를 달았다면 나를 옥죄는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 공간을 유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쏘아 올려진 그 지면을 향해 대기권을 가르며 기약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디에 날아가 꽂힐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가속되고 있다는 것.


.. 서두가 길었죠?

장기복무 안 했단 말입니다.



내가 장교로서 장기복무를 희망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에 쓰게 될 작품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 대해, 공군에 대해, 항공통제 특기에 대해, MCRC에 대해 하고 싶은 말, 떠오르는 말이야 많지만 지금은 잠시만 그냥 지나가자. 언젠가 심도 있게 터놓을 수 있는 장이 있으리라.


내 20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몸 담은 애증의 군대, 여기를 떠나기로 결심한 그 배경, 그건 단순히 몇 줄만으로 기술될 수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아직 현역이라 조심스러운 점도 있고. 뭐, 이 글에서 이렇게 마주한 것도 인연인데, 궁금하시다면 언제 또 적절한 날에 새로 나올 그 작품도 읽어봐 주시라.


근데 너는 왜 장기 안 넣었어?


김 중위님은 왜 장기 안 하셨어요?


자꾸 장기를 '안'했다고 하면 마치 지원만 하면 무조건 선발될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주변에 훌륭한 자원들이 많았기에 내가 진심모드로 갖다 박았어도 장기복무 선발이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수다. 게다가 나는 여기서 나가겠다는 내 선택이 흔들리거나 헷갈리지 않도록 심사에 필요한 자력점수(자격증, 어학, 봉사 등)를 손도 대지 않았다.


계기랄 게 있나? 아니, 역설적으로 명확한 계기가 없기에 확실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특정사건 때문이라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일 수 있는데, 이건 아주 오랜 시간 그 무언가가 뇌에 스며든 채 내린 결정이라 재입대, 재재입대를 고민하던 때와 달리 비교적 쉽고 빠르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


흔히 '콜을 친다'고들 한다. 장기복무를 희망하지 않고, 단기복무만 하고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우리 업계만의 전문용어인 '단기콜'.


이 단기콜은 칠 거면 빨리 쳐야 한다. 왜냐하면 곧 나갈 사람이 혹시나 표창장이나 평정을 잡아먹으면 좀 그렇지 않은가. 영 터무니없지만 않다면야 그런 걸 장기복무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일찍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나는 우연찮은 기회로 대장님께 그 이유를 충분히 말씀드릴 수 있었고, 결국 존중해 주셨다.


가끔 보면 간혹 단기콜이 '저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건방진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당장 내게 주어진 일들까지 다 던지고 싶지 않았고, 구조상 그럴 수도 없고, 돈도 받고 있지 않나.


한 발 더 나아가 단기복무자는 일을 대충 한다는 프레임을 나에게도 들이민다면, 냅다 낚아채 손목을 꺾어버릴 것. 번지수 잘못 찾으셨습니다.


특히 후배 교육만큼은 절대로 놓을 수 없다. 나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 더 이상 새로운 걸 찾아 나서거나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진 않겠지만, 여기에 계속 남을 후배들을 바보로 만들고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도피다.


약간의 욕심이지만, 나한테 배웠다면 그게 그 자체로 좋은 품질인증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아주 어린 시절, 선생님이 꿈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가보지 않은 평행우주를 어쩌다 보니 지금 마음껏 체험하고 있다.


그래, 갈 때 가더라도 아랫물을 잘 닦아놓고 가야지. 조직이란 게 사실 윗물만 맑아서 될 게 아니다. 흙탕물에 생수 붓는다고 그게 에비앙이 되던가? 백날 부어봐라. 그리고 그게 되면 나한테도 좀 알려줘라. 같이 한잔 합시다.



언제부턴가 나가기로 마음먹으니 새로이 보이는 게 많았다. 전에는 이게 막 내 삶의 전부인 것 같고 그랬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방향을 좀 틀어보니 군대도 하나의 길이었을 뿐이지 세상엔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갈래의 길이 뻗어 있더라는 것. 나는 요즘 그 문턱들 앞에 서성이고 있다.


먼저 군문(軍門)을 박차고 나갔던 사람들을 보고 떠나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건지 잘 알고 있다. 8년 조금 넘는 시간이 내리는 무게에 발목 잡혀 질척거리지 말자. 이론상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3번이나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은 훗날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흔히 이야기하는 '결과론'을 긍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길 바란다.


20대를 다 날려먹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꿩 먹고 알 먹고 이것저것 챙길 건 다 챙겼다. 물론 놓친 것도 있겠지만, 날아가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지. 우리 공군인들은 모두 보라매 아닌가.


장밋빛 30대를 위한 자금도 어느 정도 마련했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그렇지 않은 것, 후회를 통한 성찰,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나의 명확한 기준. 이곳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다른 데서 배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뭔가 아쉽다는 건, 그걸 잘하고 싶어서다. 그 일을 좋아한다는 증거다. 반대로 뭘 못해도 아쉽지가 않을 때, 혹은 뭔가 잘해도 뿌듯하지 않을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다.


연녹색 잔디를 딛고서 푸른 하늘로 쏘아 올렸던 은빛 탄환. 언젠가 지면을 향해 낙하하겠지만, 그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목표를 향해 내가 직접 방향을 튼 것이었으며, 끌어당겨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표적을 향해 공중에서 눈을 부릅뜨고 발사된 것이었다.


그게 낙하냐, 발사냐.

추락이냐, 명중이냐.

그런 건 내가 정한다.


일단 쐈고, 눈을 떴으니, 갑니다.

가시거리 밖의 어딘가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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