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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23. 2024

# 14. 왜 국어선생이 되었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습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혹은 내가 혼자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거기에 지키고 서 있다가

나를 툭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 부를 줄 몰랐고

나는 눈멀었어

그런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꿈틀거렸어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이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에 탄 상처들을 해독하며

나는 고독해져 갔어.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어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뛰어놀았어      






맞다.

시는 그렇게 파블로 네루다처럼

내게도 찾아왔다.

차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재능도 함께 찾아왔고,

내게는 재능이 오지 않고,

시만 덩그러니 찾아왔다는 것이겠으나...

분명한 것은

내게도 시가 찾아 왔었다는 점이다.


재능이 없이 시를 좋아하다 보니

국어 선생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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