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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01. 2024

19th. '우리가 가오가 없냐'란 말에 뜨끔해질 때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을 읽습니다.

            묘비명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있다고 생각해왔다.

직업상 젊은 청소년 그리고 청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없다는 투의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었다면,

돈이 모자란 게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밈이 유행한다.


내 생각이 맞을까.

나와 반대되는 이들의 생각이 맞을까.

이제 단언을 못하겠다.


대학생 시절.. 글 좀 쓴다고

돈 많은 아저씨의 자서전 대필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교사를 그만 둔 이후로 자소서 대필 요청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돈보다 자존심이 중요해서,

거절했다. 저는 그런 글 안씁니다.

그러나 미래에도 같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과거보다 지금,

그리고 지금보다 내일

더 돈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부자의 묘비명을 적은 유명한 문인..

그리고 그 문인의 행동을 비판하는 시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그래도.. 한 때 시인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시인의 한탄에 동의하면서도..

그 질책에 마음이 찔끔해진다.

결국 나는 시를 해석해서,

을 해석해서, 입시를 이용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또 회색인. 


노동자가 아니어서,

노동자의 날에 일을 하는 프리랜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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