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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21. 2024

30th 여정. 형식의 중요함에 대해서 읽고 있습니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서른. 레위기 10장 1절~3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나는 형식적인 것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문제 중에 허례허식은 항상 언급되지 않는가. 불필요한 형식을 깨트리고 나면, 진짜 본질을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젊은 날의 나는 모든 형식을 배격하는 삶을 살려고 했었다.


운좋게 29살에 교사가 되었다. 교사 생활 3년차가 지나자, 사람들이 선생은 어떠해야한다는 말하는 그런 기대들이 매우 형식처럼 느껴졌다. 이걸 깨부수자. 선생은 문신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 불편했다. 그래서 왼쪽 팔에 문신을 해서 여름마다 보이게 했다. 선생의 복장을 갖고 뭐라고 하는 것이 불편해서 반바지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치 내 자신을 참된 자유를 위한 투사처럼 생각했다. 내가 진정한 교사가 된다면, 형식적인 겉모습은 무엇이 중요할까 하는 그런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게 투사처럼 형식과 싸우며 30대를 보냈다.


동료 선생님의 홀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선생님 또한 이혼을 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식장은 더 쓸쓸했다. 우느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위로할 말이 내게는 없었다. 그저 장례식장에서 긴 시간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천주교식 장례가 시작되었다. 천주교의 장례예식은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절차(형식)가 복잡했고, 형식으로 꽉 짜여져 있었다. 평상시의 나라면, 그러한 절차에 불만을 가졌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절차대로 진행되는 그 엄숙한 장례 예식에서 위로가 느껴졌다. 누군가잃은 상실은 적절한 형식을 갖춰서 다뤄져야 했던 것이다. 형식이 결코 배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40세가 다 되어서야 알았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이 가혹하냐 안하냐의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형벌에 대한 불만의 기저에는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형식에 주목하는 건가. 중요한 것은 본질이 아닌가. 나답과 아비후가 정성을 다한 마음을 품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등등.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형식)는 곧 메시지(내용)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형식과 내용은 절대로 별개일 수 없으며, 형식을 떠나서 내용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미디어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그 미디어가 담을 수 있는 내용의 양상 또한 좌우된다는 이야기였다. 형식과 내용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47세인 나는 그동안 익히지 못한 형식에 대해서 배워가는 중이다. 어떠한 형식은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어떠한 형식은 내가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안가는 형식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배격하기보다는 일단 그 형식을 따르며, 형식에 담긴 내용을 배워보려 한다. 


번제단 위에 피워진 불을 사용하여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왜 그러한가를 묻기에 바쁘다. 그러한 형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형식을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함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형식에 대해서, 그 형식이 혹시 지니고 있을 수 있는 내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답답해보이는 형식을 지켜가는 자세도 오늘을 사는 겸손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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