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May 19. 2024

29th 여정. 이제 레위기를 읽고 있습니다.

듣고, 움켜 쥐고, 향하는 걸음에서 구별돼라.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레위기 8장 24절
그리고 그가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왔고, 모세가 그들의 오른쪽 귓가와 그들의 오른쪽 엄지손가락들 위와 그들의 오른쪽 엄지발가락들 위에 그 피를 발랐더라. 그리고 모세가 그 피를 제단 위 둘레에 뿌렸더라.



인도 유행을 했을 때 해나와 관련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해나는 인도의 염료로 지워지는 문신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개는 짙은 갈색을 띤다. 인도에는 해나로 몸에 그린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인도의 중년 여성 중에 해나를 두 손 가득한 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무리 미의 기준이 다르다고 하지만, 손바닥에 빽빽하게 그린 해나는 도저히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내눈에만 그러한지 물어보니, 현지인들도 손바닥에 가득 새긴 해나를 예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특이한 이야기를 해줬다.


손바닥에 새긴 해나는 부의 상징이라는 것이었다. 해나는 일단 그리게 되면, 2시간 정도는 그대로 있어야 그 색이 피부에 스며들게 된다. 해나가 성공적으로 그려지면, 일정시간 움직이지 않고 가만 있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손바닥에 해나를 했다는 것은 내 손을 당장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라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년 여인의 손바닥에 있는 해나는 자랑스런 표식이 된다고 했다. 부유한 여인은 그렇게 구별되었다.


구절을 읽으며, 인도의 해나가 떠올랐다. 엄지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물건을 쥘 수 없다. 엄지 없이는 손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아마 엄지 발가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옹립되는 과정에서 오른쪽 귓가, 오른쪽 엄지 손가락,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바르는 장면을 생각하니, 인도에서 봤던 해나를 그린 사람들 떠오다. 귓가,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에 정결한 제물의 피를 발랐다는 것은 해당 부위를 더이상 움직이지 말고, 잘 스며들도록 멈추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듣고, 무엇인가를 움켜지고, 어디론가 향해 움직이는 것에서 신의 섭리를 따르라는 상징처럼 해석되었다.


레위기는 여전이나 지금이나 쉽지가 않다. 제사법의 연속 가운데에서 의미를 찾는 게 내게는 버겁다.

이전 20화 28th 여정. 레위 자손의 헌신을 읽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