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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17. 2024

28th 여정. 레위 자손의 헌신을 읽고 있습니다.

헌신을 선택한 삶은 언제나 정당한가?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출애굽기 32장 25절-32절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오늘 글은 나도 불편하고, 나의 해석을 읽는 분도 불편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감 없이 불편함을 담아 표현해본다.


이스라엘 민족은 범죄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징벌하기로 한 하나님께 모세는 자신의 영혼을 건 설득에 나선다. 이건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를 마냥 용서할 수 없는 원리원칙이라는 신의 속성과 더불어 그래도 용서하고자 하는 신의 자애로운 속성을 이해하고 있던 모세의 현명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선생으로서 아이들의 잘못을 혼내야할 때, 마음 속으로 더불어 그만 혼내고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적이게도 공존하고 있었다. 이때 나의 마음을 캐치해서 용서를 구하도록 중재에 나서는 현명한 반장들이 있었다. 그런 반장들에게는 참 고마웠다. 용서할 명분을 만들어주었던 녀석들.


어쩌면 모세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이 명분 덕택에 이스라엘 민족은 용서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용서는 공짜가 아니다. 반드시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 그 비용은 무려 3,000명 가량의. 죽음이었다. 가혹하다. 무섭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전쟁 한 번에 수십만명씩 죽는, 그런 시대인 것을 고려한다면 이것도 넘어갈 수 있다.


 힘겹게 하는 건 레위 자손의 헌신에 대한 해석이다. 모세는 외친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나아오라. 레위 자손이 나온다. 레위 자손이 어떤 자손인가. 야곱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예언을 할 때, 시므온과 더불어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은 레위의 자손이다. 태생부터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레위 자손 입장에서 봤을 때, 본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저주받은 집안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하나님은 선대의 축복과 저주를 후대에게까지 이어질 것을 약속하면서도, 후대의 행위를 통해 그 약속의 개선까지도 허락하신 듯하다. 레위자손들의 이 결단 이후로, 레위 자손은 제사장 지파가 된다. 이렇게 보면 레위 자손의 헌신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럼에도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레위 지파의 헌신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 헌신이 자신의 형제, 친구, 이웃을 징벌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불편하다. 내가 잘 되기 위해 범죄한 나의 형제, 친구, 이웃을 징벌해야된다면, 그것이 여호의 편에 속한 자의 자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출애굽 당시에 내가 있었다면, 나라는 인간은 모세일 수 없다. 그렇다면 레위 자손이든가 그 외 자손일 것이다. 나는 레위 자손처럼 행동할 것인가. 나는 그런 선택을 안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불순종이라 명명되더라도..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다.

 

그래서 회색인의 마음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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