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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08. 2024

 8th. 순교자 -김은국

누가 더 사랑을 위해 아픔을 감당하는가.


[나를 키운 팔할의 책]     # 8.  순교자 – 김은국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그 충격과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정황으로 추론하기를 좋아한다. 정황으로 사건의 내막을 추리하는 음모론은 재밌기도 하고, 나름 설득력도 있다. 그런데 이 정황을 통한 추리는 프레임이 한번 짜여 지면, 매우 폭력적인 올가미가 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올가미의 폭력성을 하나고 교사였을 때, 나는 제대로 경험했다. 정황으로 보았을 때, 입시 부정이 분명하다... 정황으로 보았을 때, 힘있는 집안의 자녀를 봐주는 것이 분명하다... 정황으로 보았을 때,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당한 징계가 분명하다...

 

질문을 던져보자. 이 질문에 있는 그대로 답하면 된다. 순교자는 누구인가?

 

아주 폭압적인 집단이 있다. 종교적인 신념을 고수하면, 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는 그러한 극악무도한 집단이다. 그런데 14명의 종교지도자 중에서 2명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사람들이 다 죽임을 당했다. 팩트 심플하다. 2명은 살아남았고, 12명은 죽었다. 순교자는 누구인가?

 

[순교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수복되었던 평양을 배경으로 한다. 공산당이 지배하던 평양에서 기독교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숙청이 있었다. 평양을 수복한 국군은 이 숙청 사건을 조사해서, 공산당의 만행을 드러냄과 동시에, 기독교인들과 미군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를 조사하는 임무를 정의감이 투절한 원칙주의자인 이대위가 담당한다. 조사는 살아남은 2명의 배도자에 대한 검토가 핵심이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할수록, 이대위는 혼란에 빠진다. 살아남은 2명 중 신목사의 인품과 신앙이 배도를 했을 것이라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도자로 낙인이 찍힌 신목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대위는 인민군 포로 중에서 그날의 학살을 주도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 전후 맥락을 전부 듣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순교자로 알려진 12명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배도했던 것이고,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이들이 살아 남은 2명이었던 것이다. 신앙을 버린 이들에게 역겨움을 느낀 인민군 장교의 급작스런 지시로 인해 신앙을 버린 12명은 죽임을 당하고, 신앙을 지킨 2명은 살아남게 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12명의 배도자를 순교자로 기리며, 신앙을 지킨 2명에게는 배도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진실을 알게 된 이대위가 이 사실을 밝히려고 하자, 목사는 막는다. 진실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죽은 자들이 순교자가 되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기에, 자신이 기꺼이 오욕을 뒤짚어 쓰겠다고...

 

솔로몬의 재판은 유명하다. 재판관 앞에서 서로의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는 두 여자. 솔로몬이 제안한다. 공평하게 잘라서 각자에게 나눠 주거라. 이 주장에 대해 두 명의 응답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여자는 너무도 합리적으로 이야기한다. 동의한다. 공평하게 잘라서 나눠달라. 다른 한 여자가 이야기한다. 아니다. 내 자녀가 아니다. 자르지 말고, 저 여자에게 주라. 그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솔로몬이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재판은 공평하게 잘라서 나눠달라고 한 사람이 이겼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공평한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학교를 사직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을 무렵. 자신의 일로 아버지께서 세상의 부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고민하는 제자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제자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명예와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오욕을 뒤짚어 쓰겠다고 결정하였다. 온 세상의 조롱을 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 것이라 짐작도 가지 않는다. 권모술수가 잠시 진실을 가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분이 걸어온 삶이, 그의 고결한 결정을 지켜낼 것이다. 그러니... 아들아... 너무 아파하지 마라.

 

 

[순교자]에서...

 

*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 순교는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가 증인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순교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허영에 불과할 뿐이다.

 

*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 "불쌍한 교인들,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그리고 삶의 피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오. 고난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 그들을 절망의 바다로 떠내려 보내고 있소. 우린 그들에게 빛을 보여 주어야 해요. 영광과 환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거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희망이라는 환상을 준단 말입니까? 무덤 이후의, 죽음 이후에 대한 환상을 주란 말입니까?"

 "그렇소!  인간이기 때문이오.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의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그들은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목사님은요?당신의 절망은 어떡하고 말입니까?"

"그건 나 자신의 십자가요.그 십자가는 나 혼자 짊어져야 해요."


* “희망이 없을 때 인간은 동물이 되고 약속이 없을 때 인간은 야만이 된다”는 신 목사의 말. 신을 믿지 않는 이 대위를 향해 그가 “당신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 등은 의미심장하다.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은 마치 형제처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에 도달하는가?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 도정일 역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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