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오랫동안 품고 지냈던 시절에, 내게는 작가의 연보를 보는 습관이 있었었다. 작가가 처음으로 글을 쓴 시점이 언제인지, 또 위대한 작품을 썼던 시점이 언제인지를 확인하며, 그와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것인데, 처음으로 이런 행동을 했던 때는 고3 때 랭보의 <명정선>이란 시집을 읽으면서였다. 16살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19살에 은퇴한 천재 시인의 삶을 보면서, 혹 내가 랭보와 견줄 수 있는가를 떠올렸다가, 별 일 없이 20대를 지나면서 내 자신이 랭보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 후로 20대에 ‘이방인’을 썼던 카뮈가 나의 라이벌이었으나, 나는 30대가 될 때까지 그 어떤 글도 쓰지 못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30대 후반에 썼었기 때문에, 내게 30대는 작가가 되기 위한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40살을 지나게 되면서, 새로운 작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이름은 박완서이다.
사실 나는 박완서 작가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 때 방송에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라는 책을 엄청 광고한 적이 있었는데, 읽다가 너무 실망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읽게 된 박완서의 글들은 그러한 느낌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늘려서 이야기하는 수다스러움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무한 반복 스토리. 박완서에 대한 나의 느낌은 매우 박했다. 그러기에 박완서가 40대가 되어서야 작가가 되었던 스토리를 지닌 뒤늦은 등단 작가였음에도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런 내게 나와 비교도 되지 않게, 문학 지식이 풍부한 친구가 박완서의 단편을 읽어보라고 충고했고, 그 말에 따라서 책을 읽다가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도둑맞은 가난]을 읽으며, 온몸이 쪼개지는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그 전율로 인하여, 단 한순간에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도둑맞은 가난]의 여주인공은 억척스럽다. 부자였던 시절의 기억만을 떠올리며 허영심에 빠져있던 어머니와 달리, 집안이 망한 후로도, 열심히 일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 여주인공만을 남겨두고, 남은 가족이 생계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무너졌다. 홀로 남겨진 그녀... 그 외로움, 그 처절함... 그래도 여주인공은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산다. 그러다가 공장에서 처음으로 일하러온 남자를 만난다. 어리숙은 이 남자를 보살펴주다가, 정이 든다. 그리고 방값을 줄이기 위해서 둘은 동거를 하게 되고, 그렇게 그녀에게도 행복이 찾아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 남자... 억척스러운 그녀와 달리 돈에 대한 욕심이 없고, 쿨하다. 병에 걸린 동료를 위해 여자가 억척스럽게 모은 통장 전부를 건내 주고 왔을 때, 여자가 화를 내게 되고, 그 일 이후로 남자는 사라진다. 혼자 남겨진 여자... 많이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러다가 남자가 돌아온다. 아... 해피엔딩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남자 분위기가 바뀌어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반가워서 포옹하는 그녀를 밀쳐내면서 그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 나는 부자집 아들이다. 나의 아버지, 경영 수업의 일환으로 내가 가난을 체험하기 원하셨다. 그게 내가 이 공장에서 일하게 된 이유다. 그러면서 너를 만난거지. 공장 노동자로 처절한 삶을 체험하면서, 가난이 인간성을 얼마나 좀먹는지 알게 되었다. 가난이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아무 남자하고도 함께 동거를 하는 여자의 모습도 알게 되고....
여주인공은 분노하면서 남자를 쫓아낸다. 그러면서 그녀의 독백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가난은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가난까지 뺏어가는 것인가. 나의 가난이 도둑맞았어.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며, 심장이 여러 번 두드려 맞는 느낌이 들었다. 가난은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가난한 자들에게서 가난을 뺏어가지마.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예전 내가 싫어했던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유명한 고구마 발언을 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말이 왜 싫었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야, 그 싫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상대방이 경험하는 혹독한 현실을, 지금 겪고 있지 않는 이가 함부로 도둑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은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의 무서움은 오늘도, 내일도, 그 후로도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있는 것이지, 오늘은 가난하지만, 오늘의 체험이 끝나면 안락한 미래로 돌아갈 약속이 있는 부자들이 잠시의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행위는 죄악이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는 것 또한 죄악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내버려둬야 한다. 그것이 내가 여기 저기서 진행되는 체험 프로그램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다. 요즘에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군대 체험 프로그램, 오지 체험 프로그램, 가난 체험 프로그램 등등. 나는 이런 게 너무 싫다. 군대는 짧은 시간의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지와 가난도 마찬가지다. 더 싫은 것은 이렇게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한 이들이 이러한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나 또한 “그걸 해봐서 아는데....”라고 함부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여했지만, 내가 경험한 사막은 진짜 사막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보호된 사막이었다. 이걸 한 걸 가지고, 사막을 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쩌다보니, 40개국 이상을 여행하게 되었다. 많은 여행기들을 읽어보니, 그러면서 세상과 여행지의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여행을 하는 체험을 한다고 그 나라의 사람들의 현실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각 나라의 현실이란 여행자들이 잠시 스쳐가는 체험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떠돌아 다니면서, 나의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로, 박완서라는 인물은 내게 있어서 박완서 선생님이 되었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명작을 쓴 작가를 이제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분이 처음 작가가 되었다는 시기도 새삼 내게 있어서는 자극이 된다. 40살이 되어서 작가라는 이름을 살게 된 박완서 선생님. 40세는 참으로 작가가 되기에 늦지 않는 나이다. 그렇게 모두의 나의 건투를 빌어본다. 그렇게 나에게는 새로운 스승이 있다. 60살이 넘어서 '로빈슨 크루소'를 집필한 다니엘 디포! 그는 60세가 넘어서야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문학을 완성하기 전까지, 일단 오래 살자.
[도둑맞은 가난]에서..
* 합심하면 살 수 있어요. 이 동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니까 창피할 것 하나도 없어요. 아이들도 벌고 어른들도 벌고 노인들도 벌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살고들 있어요. 텔레비전 놓고 사는 집도 있고, 며칠에 한 번씩 돼지고기 구워 먹으면서 사는 집도 있고, 아무튼 시끌시끌 노래도 부르고 낄낄 웃기도 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살아요, 네. (중략) 그다음 날 내가 공장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 식구는 죽어있었다. 가을이라곤 하지만 노염이 가시지 않은 무더운 날, 방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문틈을 꼭꼭 봉하고 네 식구가 나란히 죽어 있었다.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죽어 있었다.
* (중략) 가난뱅이 짓을 장난삼아 해 보는 부자들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
* "우리 아버진 좋은 분이야. 요즈음 세상에 보기 드문 분이지. 자식들에게 호강 대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으셨던 거야. 덕분에 나는 이번 방학에 아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어." (중략) "아버진 만족하고 계셔, 내가 그동안 그 지속한 생활을 잘 견딘걸. 그래서 친구분한테도 자식들을 그렇게 고되게 키우는 걸 권하실 모양이야. 실상 요새 사람들, 자식을 너무 연하게 키우거든."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의 사회에선 가난 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기름진 영감님들이 모여 앉아, 자네 자식 거기 아직 안 보냈나? 웬걸, 지금 여권 수속 중이네. 누가 그까짓 미국 말인가, 빈민굴 말일세 하고.
* "그래서 아버지가 기분 좋아하시는 낌새를 타 가지고 네 얘기를 했어. 이런저런 빈민굴의 비참한 실정을 말씀드리다가 대수롭지 않게 슬쩍 내비쳤지. 글쎄 하룻밤에 연탄 반장을 아끼자고 체온을 나누기 위한 남자를 한 이불 속에 끌어들이는 여자애가 다 있더라고 말이야. 물론 끌려 들어간 남자가 나였단 소리는 빼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의외로 깊은 관심을 보이시고 집에 데려다 잔심부름이라도 시키다가 쓸 만하면 어디 야학이라도 보내자고 하시잖아. 좋은 기회야. 이 기회에 이런 끔찍한 생활을 청산해. 이건 끔찍할뿐더러 부끄러운 생활이야. 연탄을 아끼기 위해 남자를 끌어들이는 생활을 너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돼."
*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