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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03. 2024

6th.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나를 키운 팔할의 책]

# 6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런저 

         

    나는 대학 때 전공이 3개(국어교육, 심리학, 역사교육)였고, 졸업시 이수학점이 192학점이었다. 1학년 때 학사 경고를 맞았던 여파도 있었지만, 전공 필수 이수학점이 많다보니, 방학 때마다 계절학기 수업을 들어도, 10학기까지 다녀야 했었다.     


192학점 이수는, 내가 알기로는 고려대학교 학부생 중에서는 없었던 거 같다. 보통은 이렇게 하지 않고, 졸업한 후 대학원을 가는데, 나는 학부 전공을 여러개 하는 쪽을 택하였다. 이렇게 된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일단 국어교육과에 입학했지만, 군대에서 인간에게 실망한 이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내 삶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전공을 탐색하다가, 심리학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심리학을 선택한 이유는 나는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세상과 이토록 불화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가. 이러한 중2병 같은 고민을 나는 47살이 된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나라는 인간의 경계와 호불호를 확인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한 과업이 된 듯도 싶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이러한 질문을 늘상 던진다. 심리학을 배우면,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공부가 부족함이겠으나,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었다. 그보다는 문학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30대 중반에 읽었다. 책의 제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도서관에 갈 때마다 손이 갔지만, 계속 다음에 읽어야 될 거 같다는 생각에 미뤘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은 이후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비슷한 류의 냄새를 맡고, 직감적으로 피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닮아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서술자는 생각이 많은 사춘기 소년이다. 순수함에 대한 동경과 속물적인 삶에 대한 호기심 등이 뒤섞인 채 방황을 하지만,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소설에 있어서 큰 사건 맥락은 보이지 않는다. 부자집 도련님이 학교에서 낙제를 하고, 이를 부모님께 말할 수가 없어서 가출하여 방황하지만, 돈을 다 허비한 후, 자신을 이해하는 여동생을 찾아와 돈을 빌리며 이야기하는 그런 소소한 사건들의 연속인데...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사춘기 시절에 막연하게 한번씩을 떠올렸다가 이제는 산산히 흩어져버린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공감하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홀든은 가출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35살 쯤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소설을 읽었을 무렵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과는 동떨어진 채로 사춘기를 지나, 20대를 보냈고, 어느새 30대도 지나더니만, 이제 40대의 끝자락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의 선생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내 인생에 끼친 영향으로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이 책은 영향이 거의 없었다. 인생의 책 치고는 너무 늙은 시점에 읽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너무도 좋고, 각별하며 소중하다.     


소설의 구성을 보건대, 이 책의 주인공은 정신병원에서 의사에게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 순수한 인간의 정신적 위기에 관한 비극인 셈이다. 세상은 순수한 사람이 순수성을 지키고 살기에는 너무도 힘든 곳이라는 그런 슬픔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내 사춘기시절을 떠올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춘기가 혼란스럽다는 점에서 유사하듯, 내 지난 삶과의 닮은 점이 많다는 것 때문에 놀랐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과 앞으로의 내 삶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또 다른 결말 버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참 어렵다. 그것은 십대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십대들의 경우에는 어렵더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표현이 되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은 아쉽게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지 못했다. 이와 동일한 소망을 지닌 나는 이 소설과 다른 결말을 나의 삶으로 써보고자 한다. 바라기는 그 이야기가 너무 애절한 비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 변호사는 괜찮지만...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깐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늘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만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 서른 다섯 살쯤 되면 돌아올는지도 모르지. 누군가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경우에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없는 한, 나는 오두막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단다.     


* 물건에 따라서는 언제까지라도 현재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것이 있는 법이지. 그런 건 그 큰 유리 상자에 넣어서라도 가만히 놔둬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불가능이 너무나 안타깝거든.     


* 언제 시간 있으면 남자학교를 가보라고. 틈나는 대로 시험 삼아서 말이야. 엉터리 놈들로 득실거릴 테니. 놈들이 하는 짓이란 기껏해야 장차 캐딜락을 살 수 잇는 신분이 되기 위해 공부할 뿐이라고. 그리고 만일 축구팀이 지면 속상해서 견딜 수 없는 척이나 하고. 모두가 역겨운 패거리를 지어 똘똘 뭉친다고. 농구팀 놈들끼리 뭉친다. 가톨릭 친구들끼리 뭉친다. 지성파 친구들끼리 뭉친다. 부리지 하는 놈들끼리 뭉친다. 심지어는 월간 추천도서 클럽에 들어 있는 친구들마저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거든.     


*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기가 놓여있는 환경이 도저히 제공해줄 수 없는 어떤 걸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의 네가 바로 그렇단다.     


*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결하게 죽기 원한다는 것이고,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겸허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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