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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01. 2024

5th.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금 이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글을 쓸 자격이 있다.


[나를 키운 팔할의 책]

#5.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정신여고에서 근무한 첫해에 너무도 힘들었다. 아이들을 맞대어 수업하는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고통스럽다면,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인 글 쓰는 사람이 되는 도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내 나이 30살 겨울방학 때였다. 정신여고는 방학 때 보충수업에 대해서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평상시 학기 중에 보충수업을 미리 개설해서 담당한 후에, 겨울방학 때는 온전히 틀어박혀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틀어박힐 장소를 물색했다. 여러 소설가들의 삶을 보니, 그들 또한 어딘가에서 틀어박혀 글을 썼었다. 서울은 떠나야겠었고, 익숙한 곳도 아니어야 된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은 지방의 기도원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에 너무도 익숙하여, 내가 너무 편한 마음을 갖다 보니, 처절하게 글을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틀어박혀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떠올린 곳이 절이었다. 지금이야 절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들이 제법 있지만, 17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다. 더욱이 불교 시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두드리다 보면 열린다고, 물어 물어서 충남 보령의 한 사찰(이름이 가물가물... 백운사인가)에서 한 달 간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한 달 체류비로 40만원을 절에 내고, 절 인근에 있는 암자에서 한 달을 생활했다.   

  

그 절은 주지스님과 막내스님 두 분이서만 지내는 아주 작은 절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곳에서 생활하니, 아주 반가워했고, 한 2주 정도가 지났을 때에는 절을 내게 맡겨두고, 두 양반이서 서울로 1박2일로 출장을 갈만큼 친해졌다. 절에서의 에피소드는 지금 생각해도 빵터지는 것들이 많으니, 이것은 나중에 한 번 정리해볼 생각이다.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나는 생각보다 절에서 생활을 잘했다. 작은 스님과는 식사가 끝나면, 거의 매번 같이 차를 마셨고, 무술을 수련하시는 큰스님을 따라 이름 모를 무술도 수련했었다. 또 스님이 주신 숭산스님의 책도 읽고, 유일하게 들고 간 톨스토이의 “인생독본”도 읽으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잘 지냈었는데... 문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계속 피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수업 준비와 다른 일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디엔가 틀어박히면, 술술 글이 써질 줄 알았다. 그래서 기껏 아는 사람이 없는 절을 찾아서, 틀어 박혔건만, 노트북을 키고 무엇인가를 쓰려고 앉아 있으면, 뭘 써야될지 모르는 막막함이 나를 힘들게 하였다. 한글을 켜놓고 있으면, 커서가 계속 반짝거리면서 나를 재촉하는데, 정말 진이 빠졌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고, 이리 저리 밍기적거리다가 노트북의 잡다한 기능을 탐사하기 시작했고, 노트북에 내장되어 있던 프리셀이라는 변태같은 게임이 시간을 때우기에는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가 무서워서 프리셀로 매순간 매순간 도피했다. 마우스도 없이 패드만으로도 아주 난해한 프리셀을 가뿐하게 해결해 되는 실력을 갖추기 되었을 때, 불현듯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1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무언가를 쓰게 되었지만, 실패하고, 좌절한 채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교사 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를 못했었다. 내가 정말로 글쓰는 것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었다. 글은 쓰고 싶은데, 막상 글을 써야 되는 상황에 처하니까, 너무도 막막하고, 힘들었다. 이런 이중적인 내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나중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름 찾았던 절충점이 진짜 쓰고 싶은 글은 쓰지 않고, 감정을 섞지 않고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거였다. 이런 저런 보고서를 많이 썼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글쓰기는 무섭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모니터 앞에 대면해 있는 그 고요한 시간을 너무도 간절히 원하면서도, 막상 그 때 내가 할 말이 없을까봐, 아니면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그토록 원했던 글쓰는 시간을 막상 얻으면, 다시 도망치기 여념이 없었다. 여전히 이 두려움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은 후로 나는 이러한 나의 마음을 조금은 더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강박에서 나를 조금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나는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 조금은 관대해졌고, 한편으로는 치열해졌다.     


이 책이 내게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컸냐면, 내가 처음으로 세긴 Tatoo의 내용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었다. “Writing Down the Bones” 하나고 1기의 고3 담임을 하며, 여름방학 중에 계속 상담과 자소서 지도에 정신이 없었을 때,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들었었다. 그래서 매일 세수를 할 때마다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무언가를 내 몸에 새기자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문구를 새겼다. 아마도 현직 교사 신분이자 고3 담임으로 문신을 한 최초의 사람이지 않을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아이들 수행평가로 “프리라이팅”이라는 마구쓰기를 한다든가, 방과후 수업으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고 하여 지난 시절을 탐구하여, 자서전을 쓴다든가 하는 모든 것을 나는 이 책에서 배웠고, 그렇게 내가 함께 하는 아이들과 해보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교사로서 값진 보람이라는 선물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자유가 생기면, 어디론가 들어가서 틀어박힐 것이다. 그리고 그 틀어박힘은 사찰에서 생활했던 첫번째 틀어박힘이 프리셀의 장인이 되도록 한 것처럼 아마도 실패로 끝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열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쓸 것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게 된다. 안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이 가는 길을 받아들일 때 그 사물에 대한 진실한 글이 태어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 나는 외로움이라는 들판 속을 헤매며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로움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덤빈다 해도, 두려움에 갇혀 버리거나 존재론적 무의미로 회피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다만 지도를 꺼내 내가 가야 할 길을 확인할 뿐이다. "왜 나는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가?" 모든 것을 향해 이 질문을 던지며, 나는 나 자신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는다.     


*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 이야기를 지어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이런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말라. 이야기 만들기는 글쓰기 훈련의 자원이다. 이야기를 해봄으로써 무엇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무엇이 지루하게 만드는지 의사전달력과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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