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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10. 2024

9th.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니체

모순적인, 인간적인, 그래서 너무나 매력적인

[나를 키운 팔할의 책]

# 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니체

금지된 것은 매력적이다.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대로 탐닉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니체가 그러했다. 내 사춘기 시절에 있어서 교회는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교회가 나의 공부방이었고, 교회가 나의 휴식처였다. 그곳에 내 친구들이 있었고, 그곳에 내 짝사랑도 있었다. 교회를 떠나서 내 생활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 때 선배 중에 한명(서울대 자연과학대에 갔던 그 공부 잘하는 천재 형이구나)이 교회 공부방에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었다. 아, 그냥 책 표지에 써 있는 니체라는 이름만으로 포스가 넘쳤다. 거기다가 풍월로 니체가 “신을 죽었다”라는 말을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위험한 인물의 책을 읽으면서도, 신앙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니체를 읽기 시작했다. 아마, 그러면 나도 좀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하는 착각을 했던 거 같다.


처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책장을 넘기던 느낌은 중학교 시절 연합고사 백일주라고, 처음으로 술을 마셨던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금지를 깨는 쾌감... 그런데 그 쾌감은 금방 사라졌다. 책이 너무도 재미없었다. 어렵 쉽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았다. 지금으로 표현하자면, 허언증 갤러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가 주장하는 초인철학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니체의 책을 계속해서 읽었던 것은 가끔씩 등장하는 그의 엄청난 표현들 때문이다. 그는 생각의 특정 양상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그의 초인 철학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나의 사후 50년이 지나면, 나는 하나의 신화가 되리라.”라고 말할 수 있는 끝없는 자기 확신은 부러웠다.


태생적으로 겁이 많고, 부끄러움이 많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던 니체였기에, 신앙적으로는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니체에게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을 무렵... 나는 내 자신이 절대로 초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니체가 예찬했던 초인은 절대 될 수 없는, 나약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다. 나의 나약함을 자각하고 나자, 니체의 철학은 너무도 폭력적이었다. 초인이 될 수 없는 이에게, 초인으로 살아가는 벅찬 기쁨과 당위를 이야기하다니... 니체가 싫어졌다.


나의 연약함을 직시하면 직시할수록, 니체를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니체의 당당함이 멋있었다. 이러한 모순적인 습성으로 니체의 저서를 읽는 것 계속했다. 그러다가 니체의 사후의 메모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은 니체 최후의 저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니체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을 알게 되었다. 겹게 짐을 옮기던 나귀가 짐의 무게에 쓰러지자, 주인은 일어나길 독려하며 채찍직을 한다. 이때 니체는 주인의 채찍을 뺏은 후, 나귀를 끌어안고 울고, 니체의 정신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일화를 접하고 난 후, 니체에 대한 감정은 모호함에서 호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비록 내가 그처럼 될 수 없고, 이제는 그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인간 니체의 철저한 치열함과 모순적인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니체의 저서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볼테르를 기념하기 위하여 쓴 철학적 에세이 모음집이다. 니체의 책이 대부분이 그렇듯, 논리적으로 탄탄하고 치열하게 기반을 쌓으며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비약과 상징으로 조울증에 걸린 듯 우울과 환희를 요동친다. 그런데 그 모순적인 전개가 나는 너무도 좋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인간 니체를 닮았다. 강한 초인을 이야기하지만, 약한 나귀의 심정에 감정이입하고, 그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정신이 붕괴된, 그런 모순적인 니체를 닮았다.


세상을 살다보니, 나라는 존재가 참으로 많은 모순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없이 약하면서도 경쟁을 좋아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사람들을 보살피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쾌감이 좋았다. 예쁜 여자에게 끌리면서도, 내면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 실망하다가, 정작 내면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에게는 외모의 경중으로 매력을 평가했다. 끝없이 자유롭고 싶었지만, 막상 자유로워지는 순간에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막막함과 외로움이 무서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으면서, 나는 니체에게서 나와 같은 이런 모순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순으로 니체 자신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지 모르지만, 모순적인 특징들이 서로를 연단하는 돌이 되어 니체의 철학을 더욱 찬란히 빛나게 하였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인 것은 내게 있어서 바로 이러한 모순이다. 우리 삶에 가득한 모순은 우리가 저항하고 배척해야 무언가가 아니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니체라는 거대한 철학자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통해서 전개하는 이야기들은 의외로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삶의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렇다. 가벼운 이야기라고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무게와 깊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렇게 보면, 약간은 허세가 있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따끔 실소를 하게 되지만, 그는 그리 밉상은 아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지나간 뒤에는 마음 한구석 제법 무거운 의미가 남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 이 책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무거운 의무의 압박이 없는 사람들에게 알맞다.


* 위험한 적

모든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큰, 진리의 위험한 적이다.


* 친구의 비밀

대화의 소재가 없어서 당혹스러울 때, 친구의 비밀스런 사항을 누설하지 않을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성공적인 결혼

만약 부부가 함께 살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결혼이 훨씬 많을 것이다.


* 가장 위험한 당원

모든 당에는 당의 원칙들을 너무 신뢰하는 의견을 말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로 하여금 탈당을 자극하는 사람이 하나씩 있다.


* 환자에게 충고하는 자

환자에게 조언을 하는 사람은, 그것이 받아들여지거나 거절장하거나 간에 그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환자들은 자신들의 질병보다도 조언하는 사람을 더 미워한다.


* 신뢰와 친밀함

다른 사람과 의도적으로 친밀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있는지에 대하여 확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뢰를 확신하는 사람은 친밀함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 반대하는 이유

한 의견이 우리들에게는 단지 그 전달된 어조만이 호의적이지 않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흔히 그 의견을 반대한다.


* 용감한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되는가?

어떤 행위를 실제의 행위보다 훨씬 더 위험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


* 기다리게 하는 것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고 그들 머리 속에 나쁜 생각을 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도덕적으로 만든다.


* 지금까지 비개인적인 것이 도덕적 행위의 고유한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처음엔 보편적 이익을 고려하는 일이 바로 모든 비개인적 행위가 칭찬을 받고 특별 취급을 받는 이유였다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개인적’ 고려를 함에 있어서만이 보편을 위한 이익 역시 최대가 된다는 것, 따라서 엄겨간 개인적 행위야말로 보편적인 도덕성에 상응한다는 것 등이 현재에 이르러 점점 더 긍정적으로 통찰됨에 따라 위와 같은 견해에 대한 뚜렷한 일대 변혁이 절박해진 게 아닐까? 자신을 완전한 ‘개인’으로 만들며 모든 행위에 있어 개인의 ‘최고 안녕’을 주시하는 것, 이것이 타인을 위한 저 동정적인 감동이나 행위보다도 더 진보하게 해주는 것이다.


* 세상의 한탄 바로 옆에, 그리고 흔히 자신의 화산 지대 위에 인간은 스스로의 낙원을 건설해 왔다. 인생을 현존에서 인식만을 바라는 자의 눈으로 보든, 굴복하고 체념한 자의 눈으로 보든, 극복된 곤란을 즐기는 자의 눈으로 보든, 그는 곳곳에서 해복이 재난 옆에서 싹트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더욱이 그 땅이 화산지대였을수록 더 많은 행복이 있는 것이다. 단지 이 행복으로 고뇌 자체가 정당화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리라.  


* 동정은 파렴치함을 반려자로 삼는다. 왜냐하면 동정은 어쨌든 도움을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치료 수단이나 병의 종류와 원인에 대해서 고심하지 않고, 환자의 건강과 호소에 돌팔이 처방을 하기 때문이다.


* 소유는 단지 어느 한계까지만 인간을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 한계에서 한 단계만 나아가면, 소유는 주인이 되고, 소유자는 노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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