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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19. 2024

# 11. 아내와 다툰 후, 아직 서먹서먹할 때..

장석남 시인의 <배를 매며>를 읽습니다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이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




사랑이란 내 삶의 여정에

우연히 누군가가 들어와 던진 밧줄을 받은 것.

내가 던진 것인지,

그녀가 던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와 함께 배를 붙들어 맨 그녀는

나의 아내가 되어 있다.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인데...

나는 나의 아내와 밧줄을 매었던

그 날의 구름과 빛과 시간을 잊고 지냈구나.

그 온종일 울렁거리는 심정과 세상 신비로웠던 시간이 정지해버린듯한 그날의 광경을..


오늘 잠들기 전까지 반드시 말하자.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를 울렁이게 한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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