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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19. 2024

14th. 계속 요셉을 읽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신앙인에 대한 엄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열넷. 창세기 41장 38절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신앙인에 대한 평가를 같은 신앙인에게만 맡겨 두었을 때, 오류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속에 너무도 갇혀있다. 진보는 진보끼리, 보수는 보수끼리... 신앙을 가진 이들도 신앙공동체라는 이름 안에서 서로에 대한 자화자찬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교회를 벗어난 세상은 위험하기 때문에 믿음의 교제라는 이름으로 움츠려들어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려는 분위기가 교회 안에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은 무시당하기 딱 좋다. 개독은 바보같고 맹목적이며, 이기적이고 생각없는 사람들과 동격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일정 부분 우리들이 만들어 낸,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니 우리가 안고 가야 한다. 전광훈 목사같은 이의 행태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개탄해하지 않고, 일부라도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강간미수범이었던 요셉에 대하여 이집트왕이었던 바로는 이렇게 평가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수 있으리요. 바로가 여호와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았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바로의 평가를 신앙적 고백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는 오로지 요셉만을 알았을 것이다. 비기독교적인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팽배한 이집트에서의 요셉에 대한 인정.. 우리에게 이러한 인정이 필요하다. 교회 안, 다양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가 아니라, 그곳을 벗어난 세상 속에서 우리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엄중한 평가. 그것이 우리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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