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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23. 2024

17th. 다시 요셉을 읽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열일곱. 창세기 50장 19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70명에 이르는 야곱의 식구는 7년의 기근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고센 지방으로 거처를 옮겨 정착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요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요셉은 이들 무리의 실질적인 대표자가 되었다. 그렇게 정착한 이후, 아버지인 야곱이 죽게 되자,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형제들은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치른 후에, 요셉에게 찾아와 절하며 용서를 간청한다.  


 자신을 괴롭혔던 형제들이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상황에서 요셉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성경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미운 마음이 전혀 없었을까. 보복하고 싶지 않았을까.  요셉에게는 얼마든지 보복할 힘이 충분히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이들에게 열배, 백배, 천배의 고통으로 되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나는 현재 능력만 된다면, 그 사람을 완전히 파멸에 이르도록 보복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의 가증스러운 거짓말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너무 미워서 잠을 설칠 정도이다. 그런데 요셉은 이러한 내가 이르지 못할 경지를 보여준다. 요셉은 자신을 향한 여호와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희노애락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고통스러웠던 순간조차도 담담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자기 인식. 나는 너무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런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삶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거짓말에 수치와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곱씹는 것이었다. 그런 하나님이란 존재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런 내게 요셉의 고백은 날카롭게 찌른다.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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