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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27. 2024

# 16. 제일 좋아하는 시가 뭐냐고 질문 받았을 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읽습니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내가 가장 많이 읊은 시는 [즐거운 편지]와 [귀천] 이렇게 2편이다. 그 중에서 [즐거운 편지]가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며 읊은 거였다면, [귀천]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을 위해서 읊었던 시다. [즐거운 편지]를 외우는 데에는 누군가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동력으로 작용했었다면, [귀천]은 아무런 동력도 없는데 그냥 내게 스며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우울한 심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죽음과 연관된 것들이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 일상의 생각에 저절로 침입하여 연결되는 자연적인 귀결이다. 매일매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나의 죽음, 내게 의미 있는 이의 죽음, 이미 떠난 자의 죽음, 스쳐가는 이의 죽음 등등.. 죽음과 관련된 생각은 순간순간의 일상 속에서 강박처럼 떠오른다.


그러던 내게 [귀천]이 다가왔다. 이 시가 너무 좋았다. 구절 구절이 좋았다. 어떤 이는 새벽빛이 와닿아서 스러지는 이슬처럼 너무도 빨리 돌아가게 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노을빛 함께 놀 때까지 천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게 될 것이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는 하늘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그 마지막 남기는 말이 너무도 좋았다.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교 1학년 때 좌우명을 귀천이라고 정했다. 신입생 시절 내내 [귀천]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문장수사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귀천]에 대한 감상을 적어서 발표했다가 평론가 교수님한테 난도질을 당했다. ‘너는 시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라는 평가와 함께. 그렇다. 나는 이 시를 내 멋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는 각자 침상 앞 관물대에 가족사진과 함께 좌우명을 써서 걸어놓는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거기에다가 ‘귀천(하늘로 돌아가리라)’이라고 써났더니,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나는 훈련 낙오 이후로 여러 갈굼을 견디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좌우명을 ‘귀천’이라고 해놓으니, 마치 내가 자살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하늘로 돌아가려고 작정한 새끼’로 불리며, 관심병사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당시에 좀 억울했다. 내가 [귀천]을 읊었던 것은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삶의 의지를 다지는 쪽에 가까웠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의 마지막 연은 죽음을 맞이한 이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웠다. 죽은 자의 삶에 대한 남겨진 자들의 평가가 아니라, 죽은 자가 자신이 살았던 세상을 향해 내린 평가인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러웠길래,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는 걸까. 세상에서 지냈던 시기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세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감정이 호보다는 불호일 때가 훨씬 많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남긴 마지막말이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수사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이 시가 나의 시가 되고,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여 읊는 과정에서 내 식대로 이해되었다. 이 시는 세상에 남겨진 존재들에 대한 떠난 자의 연애편지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곳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삶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불만의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시공간이 될 터이기에, 의미있는 타자의 존재로 이 땅에서 보낸 시기는 아름다울 수 있다.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것은 풍요로운 세상을 살았던 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뜨럽게 사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이것이 아직 죽지 않은 나에게는 하나의 명령처럼 들렸다.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라.


아쉽게도 세상살이는 내게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녹녹치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도 바라기는 언제가 이 땅을 떠나는 날, 그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는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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