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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렇게, 누굴 기다리니

경북 영양 자작나무 숲

by 젤리

'당신을 기다립니다.'

자작나무 꽃말이다.


하바롭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의 바이칼 호수에 간 적이 있다. 2005년 여름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열차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바라본,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군락은 지금도 기억에 화석으로 남아 있다. 열차에서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으며, 편지 한 줄과 햇빛에 반짝이며 획획 지나가는 자작나무를 번갈아 보며 마냥 행복해했다.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의 행복을 원한다는 건 사치를 넘어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랬다, 그해 여름은. 자작나무 잎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나에게 오고, 내가 다가가고 그렇게 우린 열차 안에서 열차 밖에서 연인같이 숨바꼭질했다. 가까이 얼굴을 맞대며 만져보고 싶은 마음은 3일쯤 후에 이뤄졌다. 바이칼 호숫가 사우나(바냐)에서 자작나무 가지를 물에 적셔 온몸을 탁탁 때리기까지 했으니, 빈틈없는 조우다. 그들의 사우나 방식이다. 이렇게 자작나무는 모든 나무에 대한 내 기억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그때 겨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다시 자작나무를 보고 싶다는 바람은 지금껏 바람으로 남아있고,


그 후 8년쯤 지나,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간 적이 있다. 기다림이다.


그 후 9년쯤 지나, 이번에 영양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기다림이다.


영양군 수비면 소재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터미널 근처 별미식당에서 먹은 청국장은 노부부의 정성이 들어간 별미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죽파리 자작나무 숲이 있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생하며 햇빛을 좋아한다. 죽파리 자작나무는 솔잎혹파리로 소나무가 고사하여 그 자리에 자작나무를 1993년부터 조림했단다. 한국에서 가장 큰 자작나무 군락지. 주차장에서 자작나무 숲까지 3.2km 걷는 죽파 계곡 길은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친구와 나의 발걸음 소리가 전부다. 고도가 높고 계곡이 깊어서인지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남아있다. 다만, 그 속을 흐르는 물소리가 봄을 재촉한다. 봄의 왈츠다. 아무리 들어도 귀 고프다. 물이 맑아 손을 담그면 오염될 것 같다. 계곡 따라 걷다 보니 앞에 흰 장막이 멀리 보인다.


''와 저기다''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장막이 걷힌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 낸다고 하여 자작나무. 숲은 입구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커진다. 은백색의 나무가 산봉우리까지 쭉쭉 뻗어있다. 잎을 다 떨어낸 가벼운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비상한다. 흰 나무 몸통을 따라 목이 휘도록 위를 보니 나무 끝 가지가 하늘에 닿아 있다. 모두 흰 비단을 휘감고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환영한다. 햇빛을 받아 더 빛난다. 사방에서 쏘아대는 자작나무의 빛이 다시 친구 얼굴에 닿는다. 친구 얼굴에도 빛이 난다. 그렇구나. 자작나무는 다른 사람도 빛나게 해 주는구나.


홀로 있어도 늠름한 소나무와 다르게 자작나무는 무리 지어 있어야 아름답다. 홀로 있는 자작나무는 애처로워 보인다. 무리 지어야 하니 옆 나무와 엉키지 않으려고 하늘만 보고 위로 위로 자라는 게 아니겠나? 스스로 가지를 떨구어 내며, 떨궈 낸 자리의 검은 상처는 흠집이 아니라 배려다. 옆을 보는 깊은 눈이다. 하얀 나무의 몸에 살짝 손을 대본다. 가로로 실같이 감겨있는 껍질은 기름기가 있어서 매끄럽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 한 올을 뽑아 본다. 얇은 껍질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는, 진정 외유내강 나무다. 이 기름 때문에 썩지 않아 장기 보관이 가능하여 해인사 팔만대장경 일부도 자작나무란다. 순간을 태워 버리는 땔감으로, 영원을 지켜내는 목재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종이로, 생명을 잇게 하는 차가버섯의 먹이로, 이렇게 자작나무는 우리에게 복덩이다.


"빛은 색채다"라며 모네가 빛에 따라 달라지는 루앙 성당 모습을 연작으로 그린 30여 점의 루왕 성당은, 받아쓰기하듯 그린 성당의 모습이 아닌, 모네만의 성당 모습이다. 그렇듯 이 숲 속에서 보는 자작나무는 보는 사람에 따른 나무겠다. 누구에게는 귀공자의 모습으로, 발레리나의 결 고운 팔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다 하얗게 타버린 모습으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으로, 순결한 은총으로,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우리'라는 모습으로, 각자의 모습으로 자라나겠지. 펭귄이 '허들링'으로 남극의 혹한을 이겨내듯, 혼자보다 함께 있어 더 아름다운 자작나무의 '허들링'은 서로에게 빛을 준다. 숲 속을 거닐다 잠시 벤치에 앉아 앞을 보니 나무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듯 아쉬움에 천천히 나와 뒤를 돌아다보니 다시 흰 장막이 내려져있다.


내일도 그렇게, 호모 비아토르를 기다립니다.







영양 자작나무 숲


영양 자작나무 숲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본 자작나무
열차에서
바이칼 호숫가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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