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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곰섬 해변

글 속에서 17년 전 나를 만나며

by 젤리

*여행의 흔적을 기억보다 센 사진으로 보관하지만 대부분 다시 꺼내 보지 않는다. 사진보다 센 것이 글이지만 이 또한 잘 쓰지 않는다. 글을 보면 기억은 생생하게 다시 일어난다. 17년 전 태안반도 곰섬 해변에 갔다 와서 썼던 글인데 그대로 옮겨보며 그 시절을, 그 순간을 소환해 본다. 드물게 썼던 여행 기이고, 그 시절 나를 만나는 순간이다. 많은 글을 썼다면 더 많은 나를 만날 수 있을 텐데. 행복, 슬픔, 어려움, 모두 소중하다.

그 후 다시 곰섬 해변에 가보지 못했다. 많이 변했을 거 같다.



늦가을, 곰섬 해변


가을은 결코 감탄 없이 시들지 않는다.

단풍은 문턱까지 허물고 들어와 마음을 물들이고

낙엽은 나를 일상에서 떨어지라 한다.


11월 날씨답지 않게 따스한 햇볕이 빈 들녘에 수북이 쌓여 계절을 잊게 한다. 햇살과 빈 들녘의 포옹은 클림트의 <키스>에서와 같은 따스함과 격렬함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간월호에 이르니 철새들이 보인다. 먹이 찾아 먼 곳에서 오는 새의 치열한 삶의 여정이 때론 슬프다. 노란 은행잎이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조그만 도로 옆, 바둑판 모양의 휑한 염전은 마치 사랑에 가슴 아파 소금기만 남은 마음 같다. 언젠가 폴란드 여행 중 레스토랑에서 수프가 너무 짜서 물어 보니 옛날에는 소금이 귀했기 때문에 그 전통이 남아 있어 고급 식당은 음식이 짜단다. 소금에 그런 영광이 다시 올 수 있을까.


해안 길이 갑자기 조그만 비포장으로 바뀌면서 언덕 쪽으로 틀어진다. 팻말이 없다면 그냥 돌아가기 십상인 길이다. 허름한 언덕을 넘으니 해송이 보인다. 그 너머로 숨어있던 곰 섬 해변이 품에 덥석 안긴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는 바다는 푸른색을 잃고 흰색으로 빛난다. 푹푹 빠지지 않는 단단한 해변에는 사람 발자국보다 갈매기 발자국이 더 많다. 두 팔 안에 들어올 듯 조그만, 인적 없는 하얀 해변 사이사이에 거뭇한 바위들이 용기 있게 앉아 있다. 뽀얀 파도와 갈매기, 고깃배뿐. 이 모두가 나의 배경이 된다. 내가 그들의 배경이 된다. 해변 끝에서 끝으로 걷는다. 문득 뒤돌아본다. 발자국이 따라온다. 허름하더라도 따뜻한 발자국이 되고 싶다. 세월을 어떻게 밟아 왔길래 이제서야 이 아름다운 해변 닮은 사랑 하나 품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발끝에 닿는 조그만 파도 소리에 마음은 라벨의 발레곡 <어미 거위>에 맞춰 춤을 춘다. 해변 끝에서 발길을 돌려 해송이 있는 조그만 산으로 들어가니 희미하게 길이 보인다. 수풀을 헤치며 걷는 길에 철도 모르고 진달래가 두 송이가 피어 있다. 그것은 마치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같다. 서로 소통이 안 되는, 그래서 외롭고 불안해 보이는. 혹시 나 자신은 아닌지.


노란 감국과 쑥부쟁이 잔대가 누렇게 퇴색된 수풀 속에서 힘들게 버티며 시드는 가을을 일으켜 세우려 한다. 이곳에서 노을은 본다면 해와 함께 바다에 빠지지 않을까. 노을을 남겨두고 그곳을 빠져나와 -그것은 마치 액자 구조로 된 영화에서 빠져나오듯-간월도로 향한다. 늦은 점심으로 굴밥을 먹으니 꿀밥이다. 밀물 때는 섬, 썰물 때는 육지 같은 간월암. 무학대사는 이곳에서 달을 보며 깨우침을 얻으셨다는데 간월도는 올 때마다 사람이 많아 번잡스럽다. 힘 빠진 말랑말랑한 해가 귀로를 배웅하고, 반달은 늦가을 너와의 하루 여행을 하얗게 포장해 가슴에 안겨준다.


곰섬 해변


그대는 항상 그렇게 있었는데

숨어있었던 게 아니었는데


까마득한 시절에 던졌던

부메랑이

이제야 돌아온 듯

그는 내게 왔다

나는 그에게 갔다


반복이 미덕이었던 파도

이제

빈 세월 채워주려 달려온다

----05년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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