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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세요?

by 젤리

항상 비어있는 식탁 맞은편 자리에 ‘서재원’ 세 글자를 앉혀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니 지금까지 마주한 적이 없는 낯선 풍경이다. 조용히 소리 내 불러본다. 낯익은 내 목소리조차 어색하다. 다른 사람 같다. 이름은 내가 나를 부르는 것보다 불리는 것에 익숙하다. 그동안 몇 번이나 불렸을까? ‘여보, ㅇㅇ엄마, 며늘아, 엄마’ 등으로 불린 적이 없으니 보통 사람들 평균보다 많이 불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만큼이나 이름에도 세월이 쌓였다. 이름을 불러 준 이제는 기억조차 안 나지만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감사하다.


‘안녕하세요. 서재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름만 보고 남자분인 줄 알았어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는 대화다. 내가 봐도 동일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 같은 이름의 여자를 만난 기억이 없다.


사건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로 올라간다. 그때 오빠가 파주 모 중학교 교사였다. 내 거주지는 충남 공주였다. 어느 날 그 학교의 여학생으로부터 예쁜 손편지를 받았다. 그때는 펜팔이 유행했던 시절이다. 편지 내용은 오빠로부터 같은 학년의 동생이 있다는 거, 주소를 알았다는 등 흔한 동전 같은 내용인데 재미있었던 것은 나를 남자로 알고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그때 장난기가 발동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향적인 중2가 어찌 그런 당돌한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다. 요즈음 말하는 중2병이었던가. 답장을 썼다. 남자인 척하고. 여자인 것을 밝히면 실망할 것 같은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자주 편지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계속되었다. 내용은 주로 학교생활, 책, 과목 이야기 등이었다. 핑크빛 내용은 없었다. 아마 진짜 내가 남자였으면 러브 레터를 쓰지 않았을까? 몇 번 편지를 주고받던 어느 날 화가 더럭더럭 풍기는 편지가 도착했다. 오빠와 이야기 중에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름만 듣고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다는 내용이었다. 언젠가는 들통 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았지만 먼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백배사죄했고 그 후 우리는 더욱더 친해져 사진도 주고받았다. 편지 왕래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되다 2학년 때부터 대학 입시 공부에 붙들려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만나기로 했지만, 파주와 공주는 너무 먼 길이었다. 사진 속 얼굴만 봤던 그녀와의 편지 사건은 삭정이 같았던 사춘기 시절 한 줌 몽글몽글한 꽃봉오리로 가슴 깊이 남아있다. sns가 생활 도구인 지금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초로의 여인 되었을 그녀, 그런데 그 이름이 생각 안 난다. 그녀는 내 이름을 기억할까? 그 후로도 이름의 ‘남자인 줄’ 착각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어렸을 때는 ‘ -자, -숙, -희, -경, ’ 등으로 지어진 이름이 부러웠고 여자 이름 같지 않은 내 이름이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조금씩 이름에 얽매이는 마음도 풀어졌다. 덤덤했던 이름에 촉촉이 애정의 물길도 보냈다. 그리고 획획 지나가는 세월은 생활뿐 아니라 인식도 변화시켰다. 부러워했던 이름들은 흔한 것이 되었고 친구들이나 주위 분들은 이름이 세련되었다, 촌스럽지 않다, 현대적이다, 옛날에 그런 이름 짓지 않았다 등 이름에 대한 좋은 느낌을 둑 떠진 물처럼 쏟아 냈다. 언젠가 종로 역술집에 갔는데 소장님이 이름을 보며 누가 지었냐, 획수를 정확히 맞춰 지었다, 잘 지었다 등의 말을 들은 뒤에는 더 이름이 사랑스러웠다. 만세력과 옥편을 펴시고 돌림자를 넣어가며 며칠 동안 고심하셨을 아버지의 작명은 우리 형제뿐 아니라 조카들 이름까지 이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름이 사랑스럽다. 크고 끈끈하게 다시 불러본다. 지금은 별이 되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오늘 밤 꿈에 한 번만이라도 막내딸 이름을 부르며 나타나시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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