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워 한 병만이야. 이번에는 시라즈. 다음에 말벡. 시라즈나 말벡이나 그게 그 거더구먼. 아무거나 마시지!” 내가 응수했다.
콜키지가 가능한 식당에 가기 전 친구들과 와인 살 때 벌어지는 풍경이다.
‘시라’는 프랑스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이다. 이 시라가 호주로 가서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 시라즈가 됐다. 이 시라즈 명칭은 와인으로 유명한 이란의 시라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란의 4대 시성이 피르다우시, 루미, 사디, 하페즈다. 이 중 하페즈와 사디가 시라즈 출신이고 묘가 이곳에 있다. 시라즈, 와인과 장미와 시로 유명하며 가로수에 매달린 노란 오렌지가 나를 설레게 했던 곳. 유독 정원이 많고 이란의 유명 시인 하페즈와 사디의 묘가 있는 시라즈는 이란의 남서쪽에 있다. 테헤란에서 935km 떨어진 파르스주의 중심 도시다. 고대 유적지 페르세폴리스를 가기 위해서는 시라즈를 거쳐 가야 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였으니 이란의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 여행했던 다른 도시 사람들도 시라즈를 꼭 방문하라고 조언했다. 그들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 시라즈는 아름답고 세련된 도시며 더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시라즈는 BC2000년경 야생 장미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지금도 장미와 장미수는 주요 수출품이라 한다. 예담 정원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 있는 정원에 장미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란 위쪽 위치한 조지아는 와인 발생지로 7000여 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했다고 한다. 근접한 그곳의 영향이었을까? 이란은 1979년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와인 생산국이었다. 그 후 와인의 제조, 유통을 할 수 없고 금주다. 어기면 태형에 처한다고 한다. 이 장미와 와인을 사랑한 사람이 시인 하페즈다. 그가 와인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다음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장미는 내 가슴에, 와인은 내 손에, 연인도 내 곁에 있으니 그런 날엔 세상의 군주도 나에게는 한낱 노예일 뿐. 신은 세상을 만든 이래 와인 이외의 선물은 주지 않았다. 와인은 신의 이슬, 어둠을 밝히는 빛, 이성의 집.
괴테는 하페즈를 '대적할 자가 없는 시인'이라고 할 정도로 극찬했고, 니체는 '하페즈에게'라는 시를 썼다.
하페즈 묘는 시내에 있어 접근하기가 좋았다. 정원이 있고 오렌지 나무가 옆에 있는 하페즈 묘는 지붕이 팔각형 돔에 8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으며 원두막같이 개방형으로 되었다. 석관 묘에는 하페즈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묘’하면 통상적으로 연상되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묘 주변에 서 있거나 앉아서 묘를 만지며 책을 보고 있었다. 궁금했다.
“사람들이 읽는 것이 뭐예요?” 내가 물었다.
“하페즈 시집을 읽고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놀라기보다 경악했다. 시인의 묘에서 그의 시를 암송하거나 시집을 읽는 시민들! 이것이 페르시아 문화의 본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그들이 새롭게 보였다. 경전 쿠란과 하페즈 시집은 누구나 집에 필수적으로 있는 책이라 한다. 그만큼 사랑받는 시인이다. 우리나라 유명한 시인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들의 묘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나였다.
자국의 여자뿐만 아니라 입국 심사 때부터 관광객 여자도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하고 엉덩이 밑으로 내려오는 웃옷을 입어야 했던 때보다 하페즈 묘에서 맞닥뜨린 상황이 더 신선했다. 이 모습은 머리와 가슴에 박혔다. 그 후 십여 년 정도 후에 용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터와 묘에 갔다. 그때 이십 명 정도 단체로 갔었는데 하페즈 묘에서 봤던 일이 생각났다. 즉석에서 제안했다.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는 게 어떠냐고. 모두 동의했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외우거나 휴대폰을 보면서 시를 낭송했다. 석관도 아니고 팔각지붕도 없는, 주위에 잡풀이 무성한 곳에서 서시를 읊조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