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당신
나는 병원을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의사 선생님을 보거나 진단만 받아도 아픈 것이 금방 진정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방받은 약이나 주사에는 무척 거부감이 있는 편입니다.
주사는 몸 안에 주입한 약물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하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요,
약의 경우도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약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렵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독과 정말 급할 때 약이 듣지 않는 내성,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체중 증가 따위도 어린 시절 나에게는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이라면 몰라도 공황장애로 인한 장기간 복용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황을 진단받아 약을 처방받기 까지의 과정이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신속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처방 받은 약을 꾸준히 먹은 것은 아니랍니다.)
보통은 신체화 증상에 병원의 여러 과를 전전하다가 최종적으로 정신과에 가게 된다고 하지만
나는 증상이 나타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1차 병원에서 바로 진단서를 받아 대학 병원을 다니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사실, 내게 찾아온 공황은 낯선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더 늦은 나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젊은 시절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엄마가 겪어야 했던 어떤 날들 몇 가지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우리 남매와 영화를 보던 중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 극장 밖으로 황급히 나가던 엄마,
검정 봉지에 입과 코를 대고 호흡하던 엄마,
가까운 은행에 외출하는 것이 두려워 열 살 막내 손을 꼭 잡고 걷다가 이내 포기했던 엄마.
당시 엄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던 막내 녀석도 걷는 것이 두려워 눈물을 흘리는 엄마가 그저 이상해 깔깔 웃었다는데
나 역시도 엄마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가족사 중 가장 힘든 시기였고, 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철부지였습니다.
동생들은 어렸고, 아빠는 생계를 꾸리느라 다정한 남편은 아니었을 겁니다.
병원의 여러 과를 전전하던 엄마는 그렇게 공황장애라는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공황장애 처음 몇 년은 그렇듯 두려움으로 엄마의 일상을 갉아먹었습니다.
다행히도 처방받은 우울증 약과 신경안정제, 수면제 그리고 신앙으로 엄마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지금도 거의 공황증상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지요.
엄마의 경험으로 나는 곧바로 필요한 병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 덕분에 빠르게 치료의 길로 들어섰지만, 나는 치료를 일찍 시작한 것에 비해 비교적 오랜 시간 공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바로 약에 대한 불신, 이 병에 대한 외면,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다는 자만심 등이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그럼에도 병원은 꾸준히 다니면서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공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려 10년간 애써주셨지요.
“인간의 신체는 위험한 순간 경보를 울립니다. 공황은 그 경보 체계가 고장 난 것입니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긴급 경보를
울려 신체 증상이 나타나게 하는 거지요. 고장 난 신호 체계는 자연히 고쳐지기 어렵습니다.
약은 신호체계가 안정되도록, 올바른 때에 경보를 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
“꾸준히 먹어도 내성이나 중독증상이 생기나요? 몸에 다른 문제는 없을까요?”
“부작용 확률은 극히 낮은 안전한 약입니다. “
“우울증 약은 살이 찔 수도 있다던데요. “
“그럴 수도 있지만 약에 따라서 오히려 식욕부진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요?”
“우울증 약은 평생 꾸준히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신경안정제는 증상이 어느 정도 좋아지면 복용량을 줄이거나 단약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대화는 나의 기억을 바탕으로 각색하여 쓴 내용이므로 의학적 처방이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언제나 같았지만 나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약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그런 내가 약을 먹게 된 계기는 정말이지 단순했습니다.
미친 듯이 힘들었거든요.
끝없는 우울감은 나를 잠식했고, 공황으로 인해 발이 묶인 나는 운전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즐거운 것이 없고, 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약을 먹자.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깟 약이 뭔 대수라고.’
처음 몇 주는 우울증 약을 먹을 때마다 그나마 남아있던 슬픔과 우울이라는 감정마저도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고조가 없고 리듬이 없는 무미건조함만이 삶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삶이 크게 좋아진 것은 없었지만, 우려했던 부작용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즈음,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공황과 우울이 찾아오는 주기는 서서히 길어졌고, 그 지속 기간도 조금씩 짧아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지요.
물론 여전히 공황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고 나의 바다는 주기적으로 우울의 폭풍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나는 반갑지 않은 공황 친구가 찾아와도 이전처럼 무력하게 꺾이지 않습니다.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나는 약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공황과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아마 그것들 역시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도 들려드리기엔 오늘의 편지가 벌써 이토록 길어졌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하는 게 좋겠지요.
끝으로,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엄마가 어느 날 나에게 문득 지나가듯 했던 말입니다.
“공황을 먼저 겪은 게 나라서 정말 다행이야. 너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잖아. 네게 도움이 되라고 엄마가 먼저 공황을 겪었나 보다.“
마음이 아렸습니다. 겪지 않으면 이해 할 수 없는 공황은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지치게 만드는지 이제서야 알았으니까요.
엄마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작은 공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 나는 별 것 아닌 이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생각으로 공황을 마주합니다.
이 지독한 경험에 대한 공감이 혹시라도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노라고.
우리에게 찾아 온 절망의 끝은 결국 또다른 성장일 겁니다.
오늘도 부디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온전히 누리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