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약돌 Dec 27. 2023

우아한 연륜

  글씨에도 연륜이 묻어날까. 그렇다면 내 글씨체는 좀 우아했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한창 글씨 연습에 빠져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좀 예쁘게 썼었던 것도 같은데,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이후로 내 글씨체는 끔찍한 혼종이 되었다. 둥글둥글 귀엽다가도 난대 없이 꺾어 쓰기가 나오고, 반듯반듯하다가도 갑자기 흘러내리는 좀체 감잡을 수 없는 모양인 것이다. 큰맘 먹고 글씨체를 좀 바꿔보려고 유튜브를 찾아보니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도 많이 있었다. 이야. 저렇게 글씨 쓸 수 있으면 진짜 글 쓸 맛 나겠다.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나는 컴퓨터보다는 수첩,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빠르게 쏟아지는 정보와 그밖에 잡다한 일처리에는 결국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변명으로 디지털기기는 항상 최신을 갖춘다. 이러니 손글씨보다는 타자 치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어쨌든 글씨를 쓸 일은 아이들 공책, 교과서, 시험지 등에 피드백을 해주는 경우에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남겨진 나의 흔적이 언젠가 먼 훗날 우리 반 학생들이 공책에서 발견된다면 삐뚤빼뚤 한 것보다 우아했으면 한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예쁜 글씨를 보면 한 줄 내용이라도 '우리 선생님 참 멋지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해서.

  가지런한 글씨체, 귀여운 글씨체, 어른스러운 글씨체 뭐든 간에 어쨌든 나의 글씨체에 내 삶이 묻어난다. 그러니 우아한 글씨체를 가지고 싶은 것은 결국 내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고, 괴팍하지 않고, 조급하지 않으며 조금은 초월적인 "우아함"으로 채워지고 싶은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연습해 본다. 우아하게 글씨 쓰는 연습, 우아하게 마음 쓰는 연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더 아픈 사람이 아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