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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핀 Apr 13. 2021

제시카.

모두에게 대학초년의 시절은 시끄럽고 혼돈스러운, 제 2의 사춘기 시절 일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적어도 함께 학교에 입학한 XX학번들은 모두 그랬다. 학과 역사에 유래없이 높은 50% 여학우 비율은 선배들의 마음도 사춘기로 돌린 것 같았다. 우리는 미숙했지만, 중요한 선택들을 했다. 마음을 숨겼지만, 거짓되진 않았다. 모두 욕망을 처음 알았지만, 성취법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자유가 뭔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알았고, 책임은 유기했다. 미래의 나에게 건투를 빌며, 최악의 선택들을 했다. 


나의 육신은 그 시절의 기억들을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다. 중년은 성숙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으나, 머릿속에는 새빨갛게 부끄러운 기억들이 정육점 육고기처럼 매달려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지워버리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것들이다. 나는 무채색이 된 신문 뭉치에서 비죽 튀어 나온 천연색 전단지같은 기억과 그에 관련된 한 사람을 끄집어 내어 추억하려 한다. 



제시카는 말을 흐리지 않는다. 표현에 직설적이고, 망설임이 없다. 남이 민망하게 하는 데는 취미가 없다. 지루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빨리 찾았고, 산뜻함을 갈망했다. 그 매력덕에 선배들과도 큰 격의가 없었다. 


캐서린은 만능이었다. 수채화, 드로잉, 뎃셍등의 기교는 능숙했다. 덧칠해도 그녀의 수채화는 맑았다. 연필 가루로 탁해지는 내 그림들은 노숙자처럼 부끄러웠고 소각로로 직행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섬세한 표현 능력과 감정 표현을 등가 교환 한 것 같았다. 충동적이고, 흥분을 잘했다. 높은 피치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장난인지, 진지한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괴팍하지만 두 번 생각 않는 그녀 성격도 예술적 자질이라며 동경했다.


XX학번들은 서로 서로 친했다. 하릴 없이 배회하더라도 곧 다시 만나 화제를 꽃 피웠고, 담배를 나누었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다음날의 과제 제출을 위해 B201에 모인 우리는 흡사 OT의 연속인듯 같이 음식을 시켜먹고, 같이 노래를 불렀으며, 새벽까지 그리며 경쟁했다. 우리는 모이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며, 남은 체력을 쥐어짜서 새벽까지 함께했다. 고등학생처럼 서로를 깊게 알았고,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나눴으며, 은근한 비밀들을 서로 감추었다. 자리에 없는 자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것조차 즐거웠다. 누구도 서로가 친구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나, 모두 알고 있었다.


2학기가 되어 돌아온 4인 기숙사엔, 낯선 선배가 캔커피에 담뱃재를 털고 있었다. 그레이 선배는 지난 달 전역했다. 간단한 인사 후, 그는 유행하는 옷과 여학우들의 연애여부에 대해 질문했다. 몇 주 후, 그레이 선배는 여친이 생겼다고 말했다. 곧 생활도구를 챙겨 기숙사를 떠났다. 


한 달 후, 방으로 돌아온 그레이선배는 종이컵에 담뱃재를 털며, 자신에게 엉겨붙는 여자는 질색이라 했다. 며칠이 지나 그레이 선배는 새로운 관계를 만나고 다시 짐을 갖고 떠났다. B201 휴게실 앞, 캐서린은 그레이 선배와 함께였다. 캐서린은 종잡을 수 없던 거친 감정 변화가 줄었다. 우리와의 대화에도 말끝마다 그레이 선배 이야기를 했다. 




군휴학후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가족 같았던 여자 동기들에게서 모르는 역사들이 튀어나왔다. 여러 사건을 지나며, 의견에 따라 동기들의 무리와 부류가 보이지 않게 정해진 것을 보았다. 무리마다 사건들에 대한 대체적인 서술은 같았으나, 입장은 달랐다. 


캐서린과 그레이는 결혼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결혼. 언젠가는 당도할 이정표이지만 낯선 긴장감이 들었다. 두 사람에게서 들은 말은 아니기에 신뢰는 어려웠다. 흘러가는 말로 그레이 선배가 캐서린에게 손버릇이 나쁘다 했다. 그녀 성격의 독특함이 연인간의 다툼을 낳을 수 있다고 감안하더라도, 그건 역겨웠다. 이 매끄럽지 않은 소문들로 인해 실제 관계는 어떤지 궁금했다. 


술 한잔 하자는 여러 번의 헛헛한 약속 이후, 그레이 선배와 학과 술자리에서 같이 앉았다. 취기에 붉은 얼굴로 캐서린이 나와 동기 아니더냐고 물었다. 선배는 낯선 수줍은 미소로 캐서린을 여전히 좋아한다 했다. 흘러나오는 여러 문장들 속에서, 그는 엉겨붙는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파전을 씹다가 멈췄다.


제시카는 그대로였다. 군대 휴가때도 반가워 한 것 만큼이나, 학과를 바꾸어서 이제 연이 끊어진 나에게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전공 학과를 바꾼 것이 문파의 배교마냥 꼽을 주던 시절이었다. 가끔 주는 배신자 면박은 여전히 친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제시카는 이후 몇번의 연애의 부침이 있었던 것 같았다. 들리는 말로는, 캐서린이 그레이선배와 어려움을 느낄 때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였다.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했다. 제시카가 전화를 했다. 결혼 소식이었다. 남자친구에 대한 소식도 몰랐는데 결혼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멀었던 관계의 거리감에 미안함을 느꼈다. 축하와 참석의 약속을 했다. 잠시 후 다른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뜸 나를 힐난했다. 청첩장을 보고서야 그 앞뒤 없는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배우자가 그레이 선배였다. 


캐서린은 졸업 후 장거리 연애를 하며 몇 개월의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유학준비를 마쳤을 때 쯤, 관계의 종식을 ‘고지’ 받았다고 한다. 좋은 감정을 잘 드러내는 것 만큼, 그녀는 슬픔에 지독하게 무력했다 한다. 그리고 백일이 지나기도 전에 그녀 역시 청첩장으로 이전 연인과 친한 친구의 결혼 소식을 ‘전해’ 받았고 깊은 곳으로부터 무너졌다고 한다. 


유행가 가사 같은 일에 동기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동창회처럼 수십명의 선후배 하객이 상식이던 동기들의 결혼식과는 대조적으로, 제시카의 결혼식 초대에 응하는 것은 결연한 의지가 필요했다. 순식간에 제시카는 모두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결혼식장에 같이 가자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또한 참석하지 않았다. 이것은 의절이었다. 제시카는 결혼 후 이민을 갔다. 인터넷 까페에서도, 전화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 동안 비난의 대상은 당연하게도 그레이 선배였지만, 곧 동기들은 제시카를 비난하였다. 친구와의 관계를 저버리면서까지 결혼을 감행한 제시카의 선택에 더 많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비난에 서슴 없었다. 감정의 동요가 침잠하고, 잊어져 갈 때쯤, 제시카의 귀국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한 친구조차 다른 동기들과 언쟁을 벌여야 했고, 곧 모든 소식은 사라졌다. 



내가 결혼한지 10년이 지났다. 주변의 여러 결혼과 관계된 이야기들을 보고 듣다 보니, 제시카의 일이 떠올랐다. 친구의 관계보다 남자를 선택한 그 배경이 궁금하기도 했고,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했다. 이제 한걸음 더 떨어져 제시카의 마음도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래. 결혼하기 전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어제, 제시카가 세 살짜리 아이를 두고 세상을 마감한 것이 일곱 해도 더 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이 다르지 않았다. 


나는 마음의 짐이 있다. 제시카는 선택들을 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결혼을 결정할 때 그녀의 기분은 어땠을까. 눈이 멀 만큼 정말 행복했을까. 그녀가 의지할 곳이 꼭 동기들은 아니었겠지만, 그것 마저 없는 상실감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바보 같았고, 실체없는 정의에 도취되어 있었다. 높은 빌딩에서 추락하면, 사람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른다. 바닥도 없이 계속 지속되는 감정추락의 공포는 당사자가 아니어도 추측이 가능하다. 누구도 일상이 공포라면, 헤어나오는 길은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에 내가 빨리 자각했다면 그녀의 공포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도록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의 결과로 누군가의 가슴을 찢게 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 관계에서는 '그래야 한다' 라는 세상의 상식과는 별개로 동작한다. 그녀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허술한 정의감 뿐이었다. 내가 친구들로부터 전공을 바꿔 떠날 때도 늘 밝은 얼굴로 대해 주었던 제시카에 대해서 깊이 추억하며, 보다 더 헤아리지 못한 나의 못남을 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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