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 2]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내일 아침 창문을 열면 눈이 올까요."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밤, 우리 집 미취학 아동은 설레는 마음으로 창 밖을 보며 엄마가 즐겨 듣던 가요를 흥얼거렸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신나게 눈놀이를 할 생각에 들뜬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 밤새 쉬지 않고 내린 눈은 온 마당을 새하얗게 뒤덮었고, 주말이라 어른들의 출근길 걱정도 없었다.
"다 우리 눈이다! 놀자!"
그러고 보니 발자국 없는 새하얀 눈을 실컷 밟아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기억 속의 아침 눈길은 언제나 나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선 이들의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뽀드득- 깊게 쌓인 눈을 밟은 소리와 촉감이 꽤나 경쾌했다. 우리 집 마당에 쌓인 눈은 모두 우리만의 것이었고, 무언가 풍요롭고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정말 신나게 눈싸움을 하고, 눈오리를 만들고, 아주 아주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이 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가장 큰 눈사람이었다. 빨리 녹지 않게 그늘진 곳에 잘 모셔두었다.
그날 밤, 아이가 눈사람과 슬프지 않게 작별할 수 있도록 안녕달의 그림책 <눈아이>도 읽어주었다. 눈사람이 녹아 사라져도 다음 겨울에 다시 찾아온다는 아름답고 귀여운 이야기다. 테라스 울타리 안에 있기에, 열심히 만든 눈사람의 얼굴을 무심한 누군가가 부숴버리는 슬픈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햇빛에 아주 천천히 녹아가며 점점 키가 작아질 뿐이었다. 그래도 일주일 넘게 버텨줬다. 한동안은 나에게 '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이와 함께 커다란 눈사람을 만든 이날의 추억이 될 것 같다. 아이도 그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오늘 쌓이지 않는 봄날의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아이는 무척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