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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May 23. 2023

피아노 선생님의 정년은요?

70세까지 하고 싶을 것 같았다.


피아노가 좋아서, 아이들이 예뻐서 70세가 훌쩍 넘도록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할머니 피아노 선생님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할머니 선생님들은 레슨비도 좀 싸고, 자애롭게 잘 가르치신다고 오히려 엄마들도 학생들도 모두 만족해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70세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 나이에 관한한 편견은 전혀 없었고 그저 즐거운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을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꼬맹이 학생이 엄마 뒤에 숨어 수줍게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처음 앉는 날, 나는 자세와 손 모양을 알려주고 건반 몇 개 치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기같이 곱은 손가락으로 곧잘 따라 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그 아이들이 1-2개월이 지나면 제법 노래 같은 노래를 치게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마치 갓난아기가 일주일 이주일마다 달라지며 커가는 모습을 보는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어느덧 음악이 자리 잡고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시점이 오면 거룩한 행복감까지  몰려오는 것, 그것은 틀림없이 피아노 선생님의 보람이다.


2005년에 첫 학생을 가르치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 학생은 4학년 때 피아노 교습법에서 모집한 (어른) 학생으로 시범케이스로 한 학기 동안 가르쳤다. 교습법 강의는 한 달에 한번 클래스에서 시범 교습을 요구했는데, 어찌나 쩔쩔맸는지 지금 생각해도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 당시 학생을 이미 25명이나 가르치던 베트남계 친구는 마치 눈감고 컵을 척척 쌓는 생활의 달인처럼 엄청난 내공으로 학생을 여유롭고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그때 KO 참패를 당했다.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을 꾹꾹 누르고 진짜 첫 학생을 맞이했을 때, 나는 피아노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더 반했던 것 같다. 첫 레슨에서 벌써 부담감은 우주 밖으로 날아가고 아이들과 한편이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 이 꼬맹이들과 철저히 한편이 되어 예뻐해주기만 하기로 결심이 섰다. 그때부터 나는 공공연히 선언을 하고 다녔다.


나는 70세까지 피아노를 가르칠 거야!


그런데 요즈음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역시 몸이 안 따라주는 게 느껴진다. 몹시 피곤하다.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퇴시기를 두고 오가는 끊임없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다.  


아무래도 65세까지만 해야겠어.

아니, 당장 내년부터 그만둘까?

아무래도 차츰 학생을 줄이는 게 낫겠지?  

이젠 힘든 아이들을 정성껏 가르칠 에너지가 딸리는 것 같아.

일단 다음학기엔 꼭 학생수를 더 줄이자.


지난해에는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울면서 왔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호흡에도 문제가 생겨 응급실을 간 적도 있었고 목소리도 갈라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을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생을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폭망이다.  전에 이미 약속해 둔 학생, 팬데믹 이후에 쉬다가 갑자기 다시 복귀하겠다는 학생들까지 세어보니 다시 30명이 되었다. 이미 새로이 레슨을 요청한 학생을 12명이나 돌려보냈는데 말이다. 할 수없이 학기 중간에 5-6명을 다시 정리해야만 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내가 학생을 자르지 않는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경우 몇 달 쉬다가 다시 하자고 한 적이 한번 있었을 뿐이다. 누구를 어떻게 그만두게 하느냐로 무척 속앓이를 했다. 상처받으면 안 되는데... 가장 최근에 등록한 학생들을 정리하는 게 맞는 도리 같아 그렇게 했다. 대여섯 명을 정리했는데 수년 전에 배웠던 한 (친구 같은) 엄마가 다시 레슨을 원했고 한 학생의 동생이 배우고 싶다고 하여 또 2명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몇 명 줄었다고 호흡곤란과 목소리 문제는 없어졌고,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일도 없어졌다.


그런 극단적인 건강문제는 사라졌지만 역시 몹시 힘들고 지치는 건 사실이다. 아이들을 30명씩 가르치고 주말이면 나파로 몬터레이로 여행을 다니던 내가 지난가을부터 올봄까지 한 번도 주말여행을 못 갔다.

주말엔 쉬어야 해.

내 생일 주말여행도 취소했다. 주말에 병든 닭처럼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지냈다.

역시 70세는 무리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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