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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Nov 17. 2023

꼬맹이들의 피아노 선생님되기

처음 피아노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 도대체 대여섯 살 꼬맹이들에게 피아노를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피아노는 레벨이 높은 학생을 가르치기가 훨씬 쉽고 재미있다. 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꼬맹이들은 그 능력이 천차만별이라 일단 먼저 아이들의 능력과 관심, 성향, 집중력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런 선생님은 없겠지만 혹시 아이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면 그 선생님은 가르치기를 그만둬야 한다. 아이들의 특성에 맞게 모두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 이 꼬맹이들은 개성만점, 창의성 만점에 능력은 무한정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좀 더디게 배울 수도 있지만 창의성 레벨은 하늘을 찌르는 아이들도 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대로 잘 하지만 집중이 잘 안 돼서 가끔씩 생각이 지구밖을 떠나는 아이들도 있다. 머리로는 베토벤을 칠 수 있는데 손가락의 코디네이션이 부족해서 연습이 장기간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정말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다. 꼬맹이들의 좋은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각각의 눈높이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가르칠 궁리를 늘 해야 한다.



친구나 지인들이 간혹 물을 때가 있다. 칭찬 섞인 어조로 얼마나 잘 가르치면 어마어마한 거물 가족의 아이들을 가르치느냐는 거다. 답을 하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나는 이게 모두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축복이다. 그런데 실제 그렇게 대답을 하면 대부분 장난하냐는 듯이 돼 받아친다. 난 그냥 여느 피아노 선생님처럼 성실히 가르칠 뿐인데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뭐 특별히 잘  가르치는 비결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피아노 선생의 자질을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꽤 많다. 나는 피아노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을 때 나만의 피아노 교육 철학( Teaching Philosophy)을 세우고 시작했다. 그리고 18년이 넘도록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학생들이 음악을 사랑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평생에 걸쳐 음악을 즐겁게 듣고 연주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음악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내가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냥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가끔은 피아노 치기도 즐겨했었다. 그렇지만 음악이 그토록 깊디깊은 예술이며  음악이 얼마나 인생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깨달은 후 음악에 대한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나의 학생들에게 이런 음악의 세계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음악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 희열을 맛볼 수 있도록. 그래서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학생들에게는 작곡가의 생애, 그 음악을 작곡했을 때의 상황, 작곡자의 의도, 그 곡의 배경 등을 조사하라고 요구한다. 다음 시간에 함께 그 내용을 나누고 그 스토리를 곡의 부분 부분에 투영시킨다. 피아노에 감정이 실리고 그 아이의 느낌이 곡에 고스란히 표현이 되어 연주된다. 이런 음악은 학생들이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 감정을 그대로 담아 피아노에 실었으므로 잊을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음악의 예술성이고 감수성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예술혼이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사랑하고 음악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척이나 인내심이 깊어젔다. 원래도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니지만 이제껏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나의 무심한 한마디로 인해 아이들이 음악을 영영 등진다거나 피아노를 싫어하게 되거나 하는 일이 생길까 봐 나는 무척이나 두렵다. 선생님의 한마디로 그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못 치고 자주 틀리면 물론 기분이 나쁘다. 짜증도 난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배우려고 레슨을 받는 거고 내가 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사고를 바꾸면 화가 나다가도 저절로 풀린다. 인내심은 덤으로 따라온다.  처음 해보는 건데 못하는 게 당연하다. 이 아이가 잘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잘해도 폭풍 칭찬을 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학생들의 손가락도 춤추게 한다. 칭찬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어 더 열심히 한다. 아이고, 이쁜 강아지들~   좋은 피아노 선생님의 비결 첫 번째는 칭찬이다. 아무리 못해도 어떻게든 잘한 점을 하나라도 찾아 칭찬해 주자. 잘한 게 많기까지 하다면 그것에 충분히 감격하고 아낌없이 칭찬하자.



원하는 곡을 맘껏 칠 수 있도록 음악성과 테크닉을 길러준다.

아무리 초보자라도 자기가 원하는 곡이 있다. 나는 레슨북, 이론책, 테크닉북, 펀 북 ( Fun Book), 이렇게 책 네 권을 기본으로 가르친다. 물론 초보부터 중급정도의 레벨까지의 학생들의 경우이다. 고급 레벨이 되면 레슨과 이론북은 다 떼고 작곡자별로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등으로 가게 된다. 고급레벨 학생뿐 아니라 아주 초보학생들에게도 나는 이들이 곡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레벨에서 칠 수 있는 곡 중 한두 곡을 쳐 주고는 맘에 드는 곡을 치자고 권한다. 아이들이 음악을 듣는 능력도 향상되고 좋아하는 곡은 더 열심히 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권태기가 수시로 찾아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 중 하나도 이 권태기 넘기기였다. 한 학생이 원하는 레벨까지 올라가서 웬만한 곡들을 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권태기를 잘 컨트롤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특별히 신경을 써서인지 아이가 지겨워서 그만둔 적은 없는 것 같다. 좀 지겨워하면 나는 좀 쉬운 곡이나 아이가 치고 싶은 곡을 치면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그 시기를 잘 넘기면 또 다른 레벨로 상승하는 모멘텀을 갖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하기 때문에 진도를 빨리 나가기에 큰 무리가 있다. 대부분 7-8학년이 되면 학교 공부가 너무 많아서 모든 예능 교육을 중단하는데, 그래서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못 가고 그만둔 학생들이 꽤나 여럿 된다. 일 년만 더 해도 될 텐데... 엄마들도 아쉬워하지만 학교 공부가 너무 힘들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동안 좀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높은 수준에 오르게 하고 싶은 욕심과 스트레스를 너무 줄 수 없는 현실사이에서 나의 피아노 교육은 길을 잃는 건 아닐까, 꼭 돌아보며 밸런스를 지켜 내야 한다.



피아노 선생님의 자질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인성을 먼저 언급할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했다면 피아노를 못 치는 선생님은 없다. 기본적인 자세와 손의 모양이 매우 중요하지만 전공자가 이걸 놓칠 수도 없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피아노 테크닉과 지식이 아니라 관계와 다정함으로 가르쳐야 한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지는 아이들이 제일 잘 안다. 그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양이다. 그 사랑을 느끼고 아이들도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게 된다. 이 사랑의 관계가 피아노 교육의 큰 받침대가 되어준다.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꽤 유명한 뮤직 스쿨을 운영하시던 러시아계 피아노 선생님, 엘레나가 은퇴하시기 전에 인터뷰를 하셨다. 자신의 손주들을 위한 피아노 선생님을 구해야 한다면 자신은 선생님의 인성만을 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인내심이 있는 선생님을 찾을 것이라고 하신 인터뷰 내용이 내 마음에도 오래도록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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