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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Jan 27. 2024

나만의 와인을 빚는다

와인 블렌딩

내 와인을 블렌딩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와인을 좀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다던가, 블렌딩 해보고 싶다던가 하는 유혹과 소망을 품게 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강한 소망을 품어본 적은 없었는데, 스티븐은 와인 블렌딩을 해 보고 싶다고 곧잘 말하곤 했다. 와인 블렌딩이란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포도 품종의 와인을 섞는 것을 말한다. 스티븐이 맘에 그리 들지 않던 와인 두 종류를 자기의 감과 느낌으로 혼합시켜서 새로운 와인을 만든 적이 두세 번 있었는데, 단품으로서 맛이 별로였던 L 와인의 멀로와 캐버네 소비뇽이 스티븐의 블렌딩으로 훌륭한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보고 블렌딩의 힘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던가, 나도 블렌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내가 혼자서 여름휴가를 보낼 기회가 그 6월에 찾아왔다.  


앞서 언급한 와인 컨트리에서 나 혼자만의 일주일 휴가동안 나는 와인 블렌딩도 끼워 넣었다. 우리 부부는 매년 여름에 알래스카를 한 달간 여행하는데 남편이 시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던 두해 동안 우리는 여름휴가를 반납해야 했다. 여름휴가뿐 아니라 2년 동안 그 어느 곳도 가지 못했던 나는 급기야 나 혼자라도 여름휴가를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나는 일 년 내내 일을 한다. 그리고 4월과 여름에 긴 여행을 떠난다  일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삶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누리기 위함이 아닌가? 특히나 단조로운 미국 생활에서 여행은 말할 수 없이 큰 힐링을 준다. 그런데  2년 내내 휴식 없이 일만 하고 나니 아무리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은 나도 삶이 버겁고 힘들었다. 게다가 치매인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생긴 부부 갈등과 생활의 무질서는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해 6월 딱 1주일 동안 나파 소노마 지역으로 나만의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파 와이너리를 자주 가는 편이지만  언제나 주말에만 가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늘 아쉽고 서운하다. 그래서 늘 우리 언제 한번 나파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가고 싶은 와이너리에도 실컷 가보고 거기서 할 수 있는 재미난 액티비티도 해보자고 했었다. 이제 그 버켓 리스트를 실행할 때가 되었다!   


나는 일주일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세 가지 액티비티를 찾아냈다. 첫 번째는 Sourdough Bread (사우어 도우 브레드) 베이킹 클래스, 두 번째는 새 관찰 모임, 세 번째가 와인 블렌딩 클래스였다. 이렇게 3일은 액티비티로 보내고 나머지 날들은 레드우드 공원 산책과 와이너리 방문으로 알차게 보내고 오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숙소가 있는 레드우드의 마을, Guernville (건빌) 은 우리 집에서 2.5시간 거리이므로 먼저 사우어 도우 브레드 클래스가 열리는 Petaluma (페탈루마)에 들러 베이킹 클래스를 마치고 저녁때쯤 건빌의 숙소로 들었다.  둘째 날은 산타 로사 지역에서 한 젊은 부부가 가이드해 주는 대로 함께 산책하며 새들을 관찰했다. 몰랐던 새의 모습과 종류 그리고  새의 울음소리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또 이 젊은 부부의 새에 대한 열정과 지식에 탄복하며 즐겁게 산책을 끝냈고 다음 3일 동안은 레드우드 공원과 코벨 와이너리 방문, , 나파 와이너리 투어를 하기도 하였다. 스티븐은 하루 당일치기로 시간을 내어서 나파로 와 주어서 함께 Trefethen (트레파텐) 와이너리와 Rombauer (롬바우어) 와이너리에 다녀오기도 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와인 블렌딩 클래스 날이다.  부푼 마음으로 일치감치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보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나만의 와인을 만들어 볼 차례다.


가끔 와인 블렌딩 클래스를 여는 와이너리들이 있다. 콘 크릭 (Con Creek)  와이너리와 저드 힐 (Judd's Hill) 와이너리에 그 클래스가 있다. 하지만 내가 간 곳은 와이너리에서 주관하는 클래스가 아니고 소노마 지역에 있는 와인바에서 운영하는 클래스였다. 참석해 보니 예쁘고 아담한 분위기의 와인바의 야외 테이블에 블렌딩 세팅이 되어 있었고  한 젊은 미국인 부부가 신청을 해서 그렇게 우리 세 명이 함께 시작했다. 주관한 사람은 그 와인바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와이너리와 이 와인 바 오너 이야기를 자주 하기도 했고 와인과 포도밭, 포도 기르기에 관련된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도 간간히 이야기해 주었다.


야외 테이블에 놓인 블렌딩 세트는 보기만 해도 설렐 정도로 멋졌다. 4개의 와인잔에 담긴 레드 와인, 블렌드 할 와인 병들,  길고 작은 비이커, 커다란 비이커,  다채로운 치즈와 과일 견과류 그리고 크래커가 푸짐하게 개인별로 준비되어 있었고 가장 중요한 실험용 기록지와 펜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와인병으로 출시된 와인의 품종을 말할 때 예를 들어 캐버네 소비뇽이라던가 진판델, 피노 누아 등을 일컬을 때 대부분의 와인은 한 종류의 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캐버네 소비뇽의 경우 캐버네 소비뇽, 멀로, 캐버네 프랑, 쁘띠 버르도 라는 4가지 품종의 포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만든다.


"캐버네 소비뇽

멀로

캐버네 프랑

쁘띠 베르도"


와인의 맛과 질을 결정짓는 요소라면 포도의 맛, 품종, 나이 그리고 이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지방, 지역의 포도인지, 어떤 품종의 포도인지, 몇 년 된 포도나무의 열매인지, 그리고 어떤 품종의 다른 포도와 어떤 비율로 블렌드를 했는지 등등이 그 맛을 결정짓는다. 물론 어떤 오크통에 몇 년 숙성을 했는지, 스테인리스 통을 사용했는지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지만 일차적으로는 포도의 특성이 맛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와인 메이커들의 특권인 와인 블렌딩을 경험한다는 건 아주 특별하고 구미 당기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블렌딩 할 와인 4가지는 클래식한 캐버네 소비뇽 블렌딩 세팅이었다. 내 앞에 높여 있던 4개의 와인잔에는 캐버네 소비뇽, 멀로, 캐버네 프랑, 쁘띠 베르도가 채워져 있었고 우리는 우선 이들의 특성을 파악해야 했으므로 각 와인을 천천히 맛을 보며 특성을 기억하고 기록하였다. 한 와인 시음이 끝나면 치즈나 크래커로 또는 물로 입맛을 새롭게 하고 다음 와인의 맛을 기록해 나갔다. 나는 그때 마침 캐버네 소비뇽의 대략적인 비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의 혀의 느낌보다 더 믿었다. 내가 그때 알고 있던 대략적인 캐버네 소비뇽의 비율은 다음과 같았다.


캐버네 소비뇽 75-85%,

멀로 10-13%,

캐버네 프랑 3-5%,  

쁘띠 베르도 5-8%.


이 각각의 포도의 특성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캐버네 소비뇽: 맛 그 자체로도 훌륭한 와인이 될 수 있는 포도로 타닌이 많고 깊이 있는 맛이다.

멀로: 약한 캐버네라고 말하면 크게 문제가 없는 맛으로 약간의 타닌, 미디엄 바디의 맛.

캐버네 프랑: 깊이 있는 맛이긴 하지만 쁘띠 베르도 만큼  진한 타닌 맛은 아니다.

쁘띠 베르도: 타닌이 강한 아주 진하고 깊은 맛을 지녔다.


어떤 와인은 캐버네 소비뇽 100%으로도 환상적인 맛의 고급 와인이 된다. 아마도 포도나무 특성과 품질,  토양, 기후 등이 완벽할 경우일 것이다. 나는 작고 기다란 비커에 일단 캐버네 소비뇽을 80% 담고 13%의 멀로,  4%의 캡 프랑, 그리고 쁘띠 베르도는 3%를 담고 맛을 보기 시작했다. 좀 더 깊고 조화로운 맛을 내기 위해 조금씩 변화를 주다가 결국 완성한 비율은 캐버네 소비뇽 77%, 멀로 14%, 캡 프랑 3%, 쁘띠 베르도 6% 였다.  나름의 결과를 다른 참가자들과 공유를 했다. 자신의 비율을 알려주고 시음하게 하는 순서였다. 내 생각으로는 함께 참가한 이 젊은 부부는 그때 당장 마셔서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그들의 와인은 캐버네 소비뇽을 약 40-50%만 넣고 멀로를 많이 섞어서 맛이 부드럽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와인의 맛을 보고 떫고 진한 맛에 미간을 움직인다. 예상했던 바이다. 캐버네 소비뇽은 원래 처음 맛은 타이트하고 점점 공기와 접촉하면서 부드러워지며 다양한 맛의 레이어를 느낄 수 있는 와인이기 때문에 나의 와인은 물론 훨씬 진하고 타닌이 많은 타이트한 맛이었다. 각자 자기가 만든 와인 맛에 만족하게 되면 커다란 비어커에 750ml의 와인을 같은 비율로 블렌드 하여 새 병에 담는다. 그런 후에 전통적으로 코르크를 밀봉하는 방식으로 한 사람씩 와인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별에서 온 캐버네'라는 내 와인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나도 와인 블렌딩이란 걸 해 보았다.  물론 오롯이 나만의 선택이 아닌 와인바에서 제공한 원료 와인이었지만 나의 느낌대로 만든 나만의 와인이 완성되었다. 와인 냉장고 어딘가에 있는 내 와인, 조만간 한번 맛보고 싶다. 그동안 맛이 어떻게 숙성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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