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즐기기의 극대화
가끔 스티븐 친구인 Rombauer winery 오너인 KR과 우리가 가져간 빈티지와인 테이스팅을 한다. 와인을 마시는데 특별히 법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시는 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지극히 실용적/과학적 이유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와인잔을 돌리는 이유는 와인이 공기에 더 많이 접하게 하기 때문이고, 화이트 와인 잔을 손으로 잡지 않는 이유는 와인이 온도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종류도 많고 고려할 것도 많아 흔히 복잡한 술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그냥 마시는 것도 아니고 순서까지 두고 마시는 술이다. 나는 급해서 맛부터 보는 편이지만 남편은 항상 색-향-맛의 순서로 와인을 대한다. 그런 모습이 멋져 보여서 가끔씩 생각날 때는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하는데, 이놈의 급한 성미 탓에 맛부터 봐 버린다. 이미 한 모금 마시면 향은 제대로 맡기가 어려워진다.
일단 간략하게 다음의 순서로 와인을 마신다고 보면 그리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색 - 향 - 맛
1. 색깔, Color
와인, 특히 레드와인의 빛깔은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일단 진한색과 옅은 색. 색을 살펴볼 때는 잔을 들고 눈높이에서 보아야 진짜 색을 볼 수 있다. 진한색은 주로 깊고 풍부한 full body 와인으로 케버네소비뇽, 진판델, 프티시라 등이 깊고 짙은 빛깔을 품고 있다. 멀로(Merlo)는 약간 덜 짙은 빛이지만 그래도 진한 빛깔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옅은 레드와인은 피노 누아로 맑고 투명하면서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다.
진한 포도주색과 갈색. 레드와인은 오래될수록 브라운색으로 변해간다. 스티븐이 40-55년 된 와인들을 완벽한 온도 습도로 잘 보존하고 있는데, 가끔 그 와인들을 마실 때가 있다. 물론 색이 많이 브라운색으로 변해있지만, 그 당시에 진하고 깊은 와인이었을 경우에는 아직도 그 맛을 신선하게 느낄 수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물론 마시기 전까지 보통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니다. 주로 운반 시 적정 온도 보존, 마시는 온도등이 매우 중요하다.
1960년대 Louis Martini 와인들이다. 보관을 완벽하게 해서인지 색도 비교적 잘 보존되었고, 맛도 굉장히 좋았다.
Rombauer 와이너리에서... 막 출시된 와인이라 색이 진하고 곱다
2. 향/냄새, Nose
흔히들 다른 사람들이 와인 잔에 코를 대고 향을 맡으니까 나도 한번! 하고 냄새를 맡을 때가 많다. 일단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으려고 하는데 그리 다른 점도 모르겠고 이 와인이 저 와인 같고, 저 와인이 이 와인 같고....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자, 이제 사람들이 잘 모르는 팁을 하나 살짝 드리려고 한다.
잔을 기울인 후 코를 잔의 가장자리에 가깝게 하고 맡으면 알코올이 훅하고 올라온다. 코를 잔 중앙에 가까이하고 향을 맡을 때 비로소 와인의 과일향을 맡을 수 있다. 오홋! 정말 신기하다!
3. 맛, Taste
색을 살펴보고 잔 중앙의 향을 맡아본 후 드디어 맛을 볼 차례이다. 와인의 맛! 정말 논하기 힘든 주제이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무슨 음료를 마셨는지, 또 무슨 음식과 함께 마시고 있는지, 날씨가 어떤지, 와인의 온도가 어떤지, 잔에 따라 놓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타 등등... 이 모든 것이 와인의 맛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다섯 명이 마시면 다섯 명 모두 다른 맛을 느낄 수밖에 없다. 테이스팅을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음식을 삼가고 물만 마셨을 경우라면 모를까..
그래서 와인 마시는 재미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1. 같은 와인을 다른 음식과 마시면서 테이스팅
2. 둥글고 큰 와인 잔에 따라 놓은 와인( 주로 케버네 소비뇽이 이 테이스팅에 적합)을 1-2시간에 걸쳐 마시면서 그 맛의 변화를 느껴보시기를 바란다.
이태리 친구 마르코와 함께 캘리포니아 와인 테이스팅. 마르코가 이태리 북부 출신이라 Barbera 와인에 익숙해서 진한 캘리포니아 와인을 좋아했다. 보통 이태리와인은 가볍고 옅은 맛이다.